[다산 칼럼] GE 몰락의 교훈

입력 2018-08-19 18:50  

"미국 제조업의 상징 GE
111년 만에 다우지수 퇴출

제조업 본연 망각한 문어발 확장
성취에 안주해 변신 기회 놓칠 때
위기에 직면한다는 걸 알아야"

박종구 < 초당대 총장 >



미국 제조업의 상징 제너럴일렉트릭(GE)이 추락하고 있다. 1907년 뉴욕증시의 다우지수에 편입된 지 111년 만에 퇴출됐다. 2000년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서글픈 퇴장이다. 제조, 금융, 미디어를 아우르던 복합 기업이 사실상 해체 수순에 이르렀다.

GE는 1878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전기조명회사가 모태가 돼 1892년 에디슨전기회사와 톰슨휴스턴전기회사가 합병해 탄생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전후 경제성장에 힘입어 대표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했다. 1981년 잭 웰치 회장 취임으로 코페르니쿠스적 변화가 일어났다. 웰치 회장은 중성자탄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시장점유율 1, 2위를 지키지 못하는 사업은 정리하고 유휴인력은 내보냈다.

제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금융과 미디어산업에 뛰어들었다. 3대 지상파 채널 NBC를 인수하고 GE캐피털을 캐시카우(수익창출원)로 키웠다. 1983년 34만 명의 인력이 1993년 22만 명으로 줄었다. 서비스 부문 비중이 2000년 47%까지 늘어났다. ‘선택과 집중’ ‘제조와 금융’ ‘선제적 구조조정’이 시대의 화두가 됐다. 2000년 시가총액 5940억달러로 1등 기업이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01년 웰치를 ‘존경받는 경영인’으로 선정했다.

2001년 회장이 된 제프리 이멜트는 제조와 금융의 ‘쌍끌이 전략’을 이어갔다. 금융 부문 수익에 취해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었다. 2007년 전체 영업이익의 57%가 캐피털에서 창출됐다. 제조는 뒷전이고 금융이 주도하는 금융회사로 변질됐다. 2008년 금융위기가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돈 버는 기계’라고 칭송을 듣던 캐피털이 직격탄을 맞았다. 수익성이 악화되고 도드-프랭크 금융개혁에 따라 갖가지 규제가 도입됐다. 연방예금보험공사의 대출보증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이멜트는 사업 재편에 나섰다. ‘근본으로 돌아가라’가 키워드였다. NBC를 케이블 회사 컴캐스트에 매각했다. 가전사업부를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에 넘겼다. 수백억달러의 보유 부동산을 사모펀드 블랙스톤에 팔았다. 그러나 타이밍을 놓쳤다. 제조업이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돼 가고 애플, 구글 등 기술 기업이 슈퍼스타 기업으로 성장했다. 금융 부문 부실이 회사 전체 수익을 위협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2017년 88억달러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존 플래너리가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플래너리는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항공, 발전, 재생에너지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복합 경영에서 탈피해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뜻이다. 의료 부문을 분사하고 유전 장비업체 베어커 휴즈 지분도 내놓았다. 그러나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전력발전은 수요 예측 잘못으로 과잉 투자가 이뤄졌다. 캐피털은 잠재적 손실을 메우기 위해 150억달러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했다. 전성기 때 6000억달러에 달했던 자산이 작년 1369억달러로 줄어들었다. 과연 침몰하는 거함이 살아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문어발식 기업 확장의 폐해다. 웰치 시절 제조업 본연의 미션을 망각하고 미디어, 부동산, 금융 등으로 다각화한 것이 화근이었다. 금융위기로 캐피털이 인수합병과 투자를 뒷받침하던 시스템이 무너짐에 따라 회사 운명이 사실상 결정됐다. 투자자 워런 버핏이 3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제조업으로 돌아가라”고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기업 중 제조와 금융에서 동시에 성공한 사례는 흔치 않다.

둘째, 회사가 성취에 안주할 때 위기가 도래한다는 점이다. 금융을 앞세운 웰치의 확장 전략은 2000년대 중반 미국 주택시장 버블 등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금융위기 이전에 포트폴리오를 정비했다면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익의 60%를 쓸어 담는 위대한 성취가 ‘승자의 저주’를 불러왔다.

셋째, 변신의 타이밍을 놓친 점이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기업이 잘나갈 때 변신하는 것이 경영의 요체임을 강조한 바 있다. GE는 몇 번의 변곡점을 놓치면서 경쟁력을 되살릴 기회를 놓쳤다. 핵심 역량이 부족한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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