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규제완화 타령' 언제까지 할 건가

입력 2018-08-19 18:52  

"주요국은 4차산업혁명에 사활
한국은 아직도 신사업 규제 논란
규제혁파 없인 내일도 오늘도 없어"

차병석 편집국 부국장



[ 차병석 기자 ] 지금 미국에선 주차장 없는 빌딩의 설계가 이뤄지고 있다. ‘자동차 천국’ 미국에서 주차장 없는 빌딩이라니, 의아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운전자 없이도 돌아다니는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를 연상하면 이해가 된다. ‘아침에 출근해 자동차를 회사 주차장에 세워놓지 않아도 그 차가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사람을 태우러 움직인다.’ 이런 상황이면 땅값도 비싼 도심 빌딩의 지하 수개 층을 자동차로 채울 일은 없어진다. 한 리서치기관은 자율주행 자동차를 소유하는 미국 소비자가 전체의 25%에 도달하는 시점을 2023년으로 내다보고 있다. 5년 뒤면 뉴욕 맨해튼에 주차장 없는 빌딩이 생겨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요즘 대체투자 시장의 화두는 물류창고라고 한다. 모바일쇼핑 확산으로 서울 강남, 명동 일대의 상가 수익률은 떨어지는 반면 택배 수요가 급증하면서 물류창고의 투자가치는 오르고 있어서다. 연 7~8%의 수익률을 자랑하는 물류창고 투자펀드에 국내외 큰손들이 몰리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드론 택배까지 활성화되면 빌딩에서 가장 수익률 높은 곳은 사무실이나 상가가 아니라 옥상의 헬리포트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이 먼 얘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계산 빠른 돈들이 혁명의 현장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주요국들은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비교우위 분야에 깃발을 꽂고, 영토를 넓히고 있다. 미국은 자율주행차, 중국은 핀테크, 일본은 로봇, 독일은 스마트공장 등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본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패권을 둘러싼 싸움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각국이 사활을 걸고 미래를 개척하고 있는 마당에 입만 열만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한국은 어떤가. 우리 현실을 조금만 돌아봐도 가슴이 콱 막힌다. 정부가 최근 혁신성장을 위해 뜯어고치겠다며 뽑아 놓은 20개 핵심 규제를 보면 그렇다. 개인정보보호 규제, 원격의료 규제, 차량 공유서비스 규제 등 역대 정부에서 산업계가 입이 닳도록 혁파를 주문했던 규제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런 규제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도 살아남아 문재인 정부의 개혁 리스트에 또 오른 것을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4차 산업혁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와 드론에 대한 규제는 아예 정부의 혁파 리스트에 오르지도 못했다. 미국의 주요 도시를 누비고 있는 자율주행차는 한국 도로에선 불법이다. 미국 일본 중국에선 드론 택배 시대가 열렸지만, 한국에선 드론을 띄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무게가 12㎏을 넘거나 길이가 7m를 초과하는 드론은 사전 신고해야 하고, 25㎏을 넘는 드론은 안전성 인증을 받아야 한다. 신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일자리 창출을 옥죄고 있는 건 물론이다.

저마다 이유가 있고, 명분이 있다지만 이런 규제가 없어지지 않는 근본 원인은 딱 하나다. 기득권층의 저항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등장으로 ‘밥그릇’을 위협받는 기득권층, 즉 기존 사업자들이 규제완화를 극력 반대하고 있어서다. 여기서 기득권층은 부자와 대기업만이 아니다. 중소기업인, 골목상권의 소상공인, 전통시장 상인, 택시 기사 등이 모두 기존 산업구조와 시장에선 기득권층이다. 이들의 반발을 돌파해 규제 사슬을 끊는 결단력을 정부가 보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속도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잠시 한눈팔면 영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신기술과 서비스는 진보한다. 주요국들이 혁신적 기술과 서비스는 규제고 뭐고 일단 시도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주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해묵은 규제완화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했다간 우리에겐 내일뿐 아니라 오늘도 없다.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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