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새 아파트 꿈에 10년을 기다렸는데"…노량진뉴타운 '물딱지' 날벼락

입력 2018-08-21 07:31  

조합원 80%가 '물딱지'…과소토지로 분양자격 없어
오피스텔 지어 구제하려는데…"아파트 받겠다" 반대




재개발 열기가 뜨거운 서울 노량진뉴타운 한복판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한 정비사업조합의 조합원 대부분이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없게 됐다. 조합에서 이를 구제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이 마저도 대다수 조합원들은 오히려 반대하고 있다. 분양자격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진 사태다.

◆분양자격 몰라서…

21일 노량진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신노량진시장정비사업조합은 분양자격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다. 대다수 조합원이 ‘물딱지(입주권이 없는 주택 또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조합에서 구제안을 마련했지만 조합원들은 이를 반대하면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조합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166명 가운데 140명(84%)은 새 아파트 분양자격이 없다. 10~20㎡ 규모의 과소토지를 소유하고 있어서다. 서울시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에 따르면 종전 토지의 총 면적이 90㎡ 미만인 소유자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없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될 당시의 과거 조례를 적용하더라도 이들 대부분에겐 분양자격이 없다. 옛 조례대로라면 2003년 12월 30일 이전에 분할된 필지이면서 토지의 면적이 30㎡ 이상이어야 하고 지목 또한 도로가 아니어야 한다. 새 아파트가 사용승인을 받을 때까지는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자여야 입주권 자격이 유효하다.

조합원들이 소유하고 있는 건축물이 주택인 경우라면 새 아파트를 분양받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신노량진시장은 상가로 이뤄진 시장정비사업이다보니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토지의 권리가액이 새 아파트의 최소 규모 1가구 추산액 이상이라면 분양자격이 생길 수 있지만 여기 해당되는 조합원도 없다.


신노량진시장은 노량진뉴타운 한가운데 들어선 ‘알짜’ 정비사업으로 통한다. 노량진 1·2·3구역 사이 약 7300㎡ 규모다. 조합은 당초 낡은 시장을 헐고 2개 동, 30층, 212가구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조합원 대부분이 분양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자 구제안을 마련했다. 아파트 비중을 대폭 줄이고 오피스텔을 늘리는 내용이다. 업무시설인 오피스텔은 서울시 조례에서 별다른 분양자격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보니 조합 정관에 따라 얼마든 조합원에게 분양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대다수 조합원들은 조합이 자신들을 구제해주겠다는 데도 반대를 하고 있다. 기존의 정비사업안대로 진행될 경우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어서다. 오피스텔보다는 아파트가 돈이 된다는 생각에 매몰돼 동아줄을 걷어차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조합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들어와 바람잡는 것으로 오해하고 오히려 버티기에 들어가는 원조합원들도 있다”면서 “아파트 분양자격과 관련한 서울시의 질의회신 공문을 조합원들에게 보여줘도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조합원 자격 애당초 없지만, 구제하겠다고 나서도 반대하니…”

조합은 공동사업시행자인 A사가 조합원들을 현혹시킨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업을 추진할 당시 초기자금을 대기 위해 끌어들인 A사가 그동안 바지 조합장을 내세워 조합을 쥐락펴락 하는가 하면 7~10㎡의 땅만 있어도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모집했다는 것이다. 재개발에 정통해야 할 공인중개사들도 분양자격을 제대로 알지 못해 당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10년 이상 장기 투자 중이라는 한 공인중개사는 “새 조합장이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아파트 분양자격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면서 “꿈이 날아가 황당하다”고 말했다.

최근 오피스텔을 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부 생겨나자 A사는 조합원들에게 물밑 제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일반분양 때 고분양가를 책정해 고의로 미분양을 발생시킨 뒤 이를 조합원들에게 수의계약 형식으로 넘겨주겠다는 내용이다. 조합원들이 일단은 현금청산을 한 뒤 미계약 물량을 계약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경우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가 처분하는 시점에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고 1가구 1주택 비과세 특례에서도 제외된다. 시행사가 일단 인수한 미분양 아파트를 빼돌리지 않고 조합원들에게 수의계약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더 큰 문제는 공동사업시행자인 A사가 무자격 업체라는 데 있다. A사는 2012년 건설업등록이 말소된 상태였지만 2015년 조합이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때는 서류에 그대로 이름을 올렸다. 조합 관계자는 “동작구청의 과실이지만 공동사업시행자 지정철회를 해주지 않고 총회를 통해 해결하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합이 당초 계획에서 아파트를 줄이고 오피스텔을 추가로 짓기 위해서는 사업시행변경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A사를 퇴출시키고 조합이 단독으로 시행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달 말 열린 공동사업시행자 선정 취소를 위한 총회에선 참석한 전원(60명)이 동의했지만 정족수엔 미달했다. 조합은 여전히 A사에 휘둘리는 조합원이 많아 참석률이 저조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홍범기 조합장은 “피해자가 될 사람들을 구제해주겠다는 데도 믿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면서 “복잡하고 어려운 제도가 사기꾼들을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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