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영 경제부 기자) 지난주 국민 10명 중 7명이 원자력발전 이용에 찬성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폭염에 따른 전력수급 위기와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논란 등으로 탈(脫)원전 정책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나온 결과여서 주목됐지요.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습니다. ‘정부의 전반적인 에너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못한다’고 답한 비율이 50.1%로, ‘잘한다’는 응답률(45.5%)보다 많았지요.
이 같은 결과는 탈원전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큰 파장을 던진 모양입니다. 급기야 ‘에너지전환포럼’등 환경단체와 일부 매체는 여론조사가 왜곡됐다는 주장까지 내놨지요. 대표적인 주장은 이렇습니다. △‘찬성하는 발전 수단’ 대신 ‘찬성하는 전기 생산 수단’이라고 물었다는 점 △향후 원전 발전 비중을 어떻게 할지 묻기 전에 ‘현재 원전의 전기 생산 비중은 30%’라는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 △폭염으로 전력 수급이 불안정해졌을 때 설문조사를 진행해 원전 찬성 여론이 높게 나오도록 했다는 점 △선호하는 발전원으로 태양광(44.9%)이 원자력(29.9%)보다 높았는데도 언론들이 원전 찬성 여론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설문조사 주최측은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발전수단은 경제발전(發展) 등과 혼동될 수 있어 오히려 쉽고 중립적인 ‘전기 생산 수단’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고 △원전 발전 비중은 현 상황을 알아야 확대나 축소를 판단할 수 있으니 사실 제시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전력 수급이 국민적인 관심사가 된 시기에 설문을 진행했고 △원자력의 경쟁 대상은 태양광이 아니라 선호도가 더 낮은 액화천연가스(12.8%), 석탄(1.7%)라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모든 설문조사는 왜곡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심리가 생각보다 섬세하기 때문이지요. ‘최신 효과’라는 통계학 이론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이혼이 더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더 어려워져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했을 때와 순서를 반대로 바꿔 질문했을 때, 똑같은 질문인데도 마지막 선택지를 선택하는 비율이 항상 더 높게 나온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이 같은 편향을 없애기 위해 통계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고, 여론조사 기관과 전문가들이 있는 겁니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께 맡깁니다. 다만 이번 여론조사를 비판하는 이들이 “현대경제연구원의 6월 설문조사에서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대한 찬성 의견이 84.6%가 나왔다”는 점을 강조하는 건 상당한 어폐가 있습니다. 이 조사야말로 명백히 탈원전 진영이 말하는 ‘왜곡’에 가깝거든요.
현대경제원은 지난 6월 조사에서 “원전과 석탄발전을 축소하고 신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발전을 확대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친환경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반(反)환경을 선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니까요. 그런데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LNG발전이 미세먼지와 탄소 배출이 없는 원전보다 무조건 친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설문 중간에는 조사원이 일방적으로 원전의 단점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원전 사고 위험이나 미세먼지, 온실가스 배출과 같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을 위협하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문구였죠. 원전의 장점은 일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설문지에는 ‘환경과 안전을 위협하더라도 생산 비용이 조금이라도 적게 드는 에너지원’과 ‘생산 비용이 다소 증가하더라도 환경과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원’ 중 선택하라는 질문까지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원자핵공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나라도 저런 질문을 받으면 후자에 찬성하겠다”며 헛웃음을 지었지요.
민간 연구기관의 여론조사 전문가가 설계한 질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여서, 연구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해당 연구자는 “정부가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잘 추진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아리송한 대답을 내놨습니다. 다른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는 “정부는 연구기관이나 여론조사기관의 가장 큰 고객이라 정부 정책을 도울수밖에 없다”고 평했지요.
그런데도 꾸준히 현대경제원의 여론조사를 예로 들며 “탈원전 여론조사는 왜곡됐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부 네티즌은 “여론조사 대상이 1000명에 불과해 신뢰성이 없다”는 주장까지 제기했습니다. 여론조사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표본을 정확하게 무작위 추출해 1000명 정도만 조사하면 전체 여론의 윤곽이 나타난다는 것은 기본적인 수학 원리로 입증돼 있지요. ‘큰 수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 지지율 등 우리가 접하는 여론조사 결과 중 절대 다수가 1000명 정도를 대상으로 합니다. 인구가 3억 명이 넘는 미국도 마찬가지이고요.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설문지와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민주시민으로서 여론조사의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의아한 여론조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찾아보는 것도 좋겠지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는 걸 배울 수 있으니까요. (끝)/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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