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잘 듣는 것의 가치

입력 2018-08-21 18:29  

김태호 < 서울교통공사 사장 taehokim@seoulmetro.co.kr >


“잘생긴 고객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스타벅스 직원이 고객을 부르는 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스타벅스에서 개발한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음료를 주문하면 자신이 지정한 닉네임을 불러주는 것이었는데, 세심한 서비스에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 앱을 통해 주문하면 대기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결제까지 한 번에 끝낼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다양한 정보기술(IT)이 제품과 서비스에 접목되면서 생활 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수집과 공유다. 데이터를 자산화하는 과정과 그 데이터가 공유되고 상호작용하는 수준이 디지털 전환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다.

필자는 회사에 출근하면 매일 ‘고객의 소리(VOC: Voice of Customer)’에 어떤 의견들이 접수됐는지부터 확인한다. 여기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시설의 소리(VOF: Voice of Facility)’다. VOF시스템에는 승강기, 전동차, 승강장 안전문, 신호·통신·궤도·전기시설, 공사현황 등 지하철 운영에 꼭 필요한 14가지 분야의 정보가 총망라돼 있다. 말단 직원부터 경영진까지 누구나 접속해 ‘아픈’ 시설물이 내는 소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실시간 운영 상태, 기간별 고장 건수, 최초 고장 시기와 조치 내역, 추이 분석 차트 등을 제공한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는 통계 작성과 추이 분석에 활용한다. 시설물이 보내온 빅데이터가 점검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고장 정보가 부품의 교체 시기를 결정하게 된다.

VOF시스템을 통해 관리되는 데이터 중 승강편의시설 고장 현황은 모바일 앱 ‘또타지하철’을 통해 승객들과 상시 공유된다. 미리 설정해 놓은 역의 승강기가 고장 나면 앱에서 푸시 알림을 보내주는 덕분에 더 이상 고장 난 엘리베이터 앞에서 유모차를 돌리지 않아도 된다. 달리는 전동차가 최첨단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선로의 이상을 점검해 전송하고 드론을 띄워 교량을 점검할 날도 머지않았다.

고객이 느끼는 불편사항뿐 아니라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시설물이 내는 작은 소리까지 이런 정보를 가공해 유의미한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디지털 관리 시스템은 이제 지하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필수 도구가 됐다. 정확하고 정교한 데이터를 얻는 것은 잘 듣고자 하는 태도에서부터 시작한다. 스마트한 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시대에도 귀 기울이는 것이 가지는 아날로그적 가치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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