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종근당 이어 벤처 경영
지난 5월부터 협의회 회장 맡아
"줄기세포 치료 허용범위 넓혀야
데이터 쌓이면 바이오 발전에 도움"
[ 임유 기자 ] “한국은 바이오 강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나라입니다. 그런데 자본이 있는 대기업과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이 협력하는 생태계가 미비하다는 게 걸림돌이죠.”
이병건 첨단재생의료산업협의회 회장(사진)은 23일 서울 삼성동 사무소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 바이오산업이 처한 현실을 이같이 진단했다. 이 회장은 녹십자 사장, 종근당 부회장 등을 지내고 바이오 벤처기업 SCM생명과학 대표를 맡고 있는 전문경영인이다. 지난 5월 차광렬 차병원그룹 글로벌종합연구소장(창업자)에 이어 2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첨단재생의료산업협의회는 2015년 이 회장이 차 소장,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박소라 인하대 의대 교수 등과 뜻을 모아 설립한 단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메디포스트, 코오롱생명과학, 파미젠 등 48개 바이오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규모가 작은 바이오 기업들이 한국 바이오산업이 가야 할 방향을 한목소리로 제시하자는 취지에서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 바이오 선진국에선 재생의료 관련 학교 병원 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비영리단체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며 “임기 2년 동안 협의회 활동을 궤도에 올려 놓을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한국 바이오산업에 기대와 위기감을 동시에 내비쳤다. 한국이 경쟁력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골든타임을 놓치면 뒤처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뛰어난 의료 인력과 풍부한 임상 환경,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건강보험 등 우리만의 강점이 많다”면서도 “불합리한 규제를 풀지 않으면 몇 년 뒤엔 일본, 중국에 완전히 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4년 재생의료법을 개정한 일본 사례를 들었다. 이 회장은 “일본 정부는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 1상을 통과하면 환자에게 줄기세포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며 “그 결과 미국의 세포치료제 기업들과 수많은 해외 환자가 일본으로 몰려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령 환자에 한해 안전성이 입증된 줄기세포치료제를 쓸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 회장은 “줄기세포치료제 효능이 아직 확실하지 않아 젊은 환자에게 적용하는 데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며 “뇌졸중 같은 질환으로 삶의 질이 낮아진 고령 환자는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쌓이는 임상 데이터는 재생의료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바이오산업이 발전하려면 대기업과 중소 벤처 간 협력이 잘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그는 “산업이 성장하려면 투자금이 넉넉해야 하는데 대다수 바이오 기업이 소규모여서 큰 사업에 도전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대기업과 바이오 벤처가 손잡고 임상시험, 제품 생산 등을 함께하는 협업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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