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딛고, 다시 걷는 미야기현 올레길

입력 2018-08-26 20:18  

여행의 향기

'글쓰는 셰프' 박찬일의 세계 음식 이야기 - 일본 미야기의 맛, 올레의 치유

청주에 상어 심장 한 점 '식감 쫄깃'

일본 동북부 어업도시 게센누마 항구
횟감인 황새치·가다랑어에 침샘 자극

센다이서 맛보는 '즌다모치'도 일품
마쓰시마 절경 올레길 10월7일 개장



일본 동북지방의 어업도시 게센누마(氣仙沼). 몇 해 전 쓰나미가 쓸고 갔던 최대 피해지 중 하나. 도시는 그새 재생 내지 부흥돼 있었다. 어시장의 벽에 당시 물이 들어찼던 높이를 표시해 놓은 정도가 이곳이 쓰나미 피해지역임을 말해줄 뿐이다. ‘고다이’라는 선술집에 먼저 들렀다. 게센누마의 명물 상어 심장을 먹기 위해서다. 게센누마는 태평양을 마주 보고 있다. 이 항에서 출발하면 미국과 호주와 태평양의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고깃배 처지에서는, 바다로 나가면 바로 태평양이 어장이다. 거대한 생선이 사는.

오돌오돌한 육고기 씹는 듯한 상어 심장

익숙한 솜씨의 이타마에(주방장)가 몇 가지 전채요리를 내고는, 이내 작은 접시에 생경한 횟감을 썰어낸다. 상어 심장이다! 상어는 거대한 놈이다. 그렇지만 심장은 작다. 포유류에 비해 어류의 심장이 작기 때문이다. 먼저 심장이 피를 받아들이는 입구, 대동맥과 심장이 만나는 부위가 썰어져 나왔다. 쫄깃하다. 피냄새는 없다. 눈을 감고 먹으면 오돌오돌한 식감의 육고기를 씹는 것처럼 느껴진다. 심장의 본 부위가 나왔다. 쫄깃하면서도 씹을수록 부드럽다. 기름장에 찍어 먹어도,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도 좋다. 술을 부른다. 미야기는 일본에서도 손꼽는 최고급 청주의 생산지. 혀에 감기는 최상급 술들이 엄청나게 생산된다. 산과 물, 기후가 잘 맞아서다. 고다이는 청주 리스트가 요란하지 않다. 대신 확실한 맛의 두 가지 술을 냈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과일향이 풍부한 준마이다이긴조가 개봉됐다. 상어 심장과 잘 어울린다. 여행에는 예감이 있다. 미야기의 맛이 매혹적일 것이라는 암시랄까, 고다이의 음식이 입에 맞았다. 취재를 떠나기 전, 서울에서 미야기현 서울사무소장을 만났다. 물론 미야기현의 파견 공무원이다. 그의 명함에는 딱 한 줄이 쓰여 있었다. 식재왕국(食材王國) 미야기.


상어 심장은 이곳 게센누마가 아니면 먹기 어렵다.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 갓 잡아 들어와 경매된 것을 그날 소비해야 한다. 물론 도쿄에서는 먹을 수 있다. 도쿄니까 대신 비싼 값을 각오해야 하고, 아무래도 선도도 떨어진다. 상어의 심장은 크기가 주먹만 하거나, 그 두 배 정도가 고작이다. 상어의 내장 중에서 먹는 건 오직 심장뿐이다. 간도 안 먹는다. 상어 특유의 암모니아가 퍼져서 쉽게 먹을 수 없다. 심장만은 제외. 심장을 먹으면 상어 한 마리를 먹은 셈이라고 한다. 선술집 주인이 시장에서 사올 수 있는 가격이 1㎏에 5000엔. 품질 좋은 참다랑어의 등살(아카미) 가격 정도이니 상당히 비싼 편. 일본어로 상어는 사메라고 부른다. 게센누마 항에 들어오는 상어 종류는 다양하다. 그중에서 이렇게 심장을 먹을 수 있는 상어는 아무래도 덩치가 큰 쪽이다. 이날은 모카사메, 즉 악상어(한국에서는 청상어라고 부름)였다. 상어 심장을 이르는 말은 보통 ‘모카노호시’다. 모카는 상어의 종류, 호시는 별(星)이라는 뜻. 멋진 명명이다. 여행 내내 모카노호시라는 말이 입에 감돌았다.

일본의 부엌을 책임지는 게센누마

게센누마는 내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오다 가즈히코라는 일본의 유명한 이자카야 전문가의 책을 본 후였다. 그는 전국을 돌면서 명물 이자카야를 소개하는데, 게센누마에도 들렀다. 그 집이 마침 바닷가에 있는 집이었고, 알려진 대로 동일본대지진 때 게센누마는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 과연 이 도시는 살아났을까. 그때 소개된 이자카야는 어떻게 됐을까. 도시는 완전히 복구돼 있었다. 도시에 얽힌 사람들의 개별사와 도시의 사회사는 변화됐다. 누구는 이주하고, 누구는 새로 들어왔다. 다시 게센누마라는 어항은 활력을 찾고, 옛 아픔을 묻은 채로 부흥하고 있었다. 어시장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어시장에 갔다. 거대한 어시장, 경매가 이뤄지는 시간대에는 어시장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대신 2층에 일본 최대의 500m짜리 견학대를 설치해 놨다. 시장 길이와 비슷하게 길다. 올가을 신(新)어시장이 생기는데, 무려 900m다. 현재의 두 배 길이가 된다.


견학대를 걸으며 어항을 조감할 수 있었다. 계절마다 들어오는 생선이 다르지만, 게센누마는 기본적으로 대형 어류와 가쓰오(가다랑어) 같은 대량 포획 어류가 주로 들어온다. 다양하고 작은 생선은 인근의 어항으로 많이 간다. 그러니까 게센누마는 산업형 어업의 전진기지다. 바닥에 놓여진 생선은 딱 세 가지. 상어, 가다랑어, 황새치. 상어는 지느러미를 자르고 있었다. 물론 합법적인 어업이다. 상어는 이곳에선 알뜰하게 소비된다. 심장은 회로 내고, 살은 주로 어묵(가마보코)의 재료가 된다. 뼈는 사메낭 같은 밥반찬(술안주)이나 수프의 재료가 된다. 황새치가 마침 제철인가 보다. 어마어마한 덩치가 대량으로 누워 있다. 200㎏ 정도 나가는 놈도 꽤 된다. 특유의 기다란 주둥이는 잡자마자 자른다. 사람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새치는 한국의 참치집에서 즐겨 쓰는 횟감. 여기서도 물론 횟감이 되고, 상당 부분은 샤부샤부의 재료가 된다. 가다랑어는 일본 최대의 집산지. 시코쿠의 고치(高知)현과 이곳이 유명하다. 일본 음식의 기본은 ‘다시’이고, 그 다시의 주재료가 가다랑어 말린 것(가쓰오부시)이다. 그러니까 게센누마는 일본의 부엌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안 그래도 미야기현을 ‘도쿄의 식탁’이라고 부른다. 미쉐린가이드 별 숫자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도쿄의 음식을 미야기의 재료가 상당 부분 채우고 있다는 뜻이다.

상어는 싱싱한 것도 냄새가 난다. 그래서 찬물에 이틀쯤 담가 냄새를 빼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돔베고기처럼 콤콤하게 약간 삭힌 채로 먹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일본에서 잡히는 상어의 90%가 이곳으로 온다. 상어의 도시다. 가다랑어의 분류작업이 한창이다. 이건 가쓰오부시로 팔리지만, 횟감으로도 시중에 깔린다. 동네 슈퍼에서도 팔 정도다. 한 마리에 5000원 정도라고 한다. 견학을 안내한 어시장 직원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게센누마 시민은 누구나 회를 뜰 줄 압니다.”

완두 으깨 모치에 묻혀내는 즌다모치 일품

나의 취재 일정은 센다이에서 시작됐다. 센다이-마쓰시마-게센누마로 이어졌다. 센다이까지 아시아나항공이 하루 한 번 뜬다. 비행기는 아담하지만 만석. 10년 만이다. 일본은 홋카이도 밑 혼슈의 6개 현을 아울러 도호쿠(東北) 6현이라고 부른다. 한때 이곳을 주유한 적이 있다. 현마다 벌이는 여름 마쓰리(축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센다이 공항은 그때처럼 조용하게 손님을 맞았다. 도호쿠 6현 가운데 미야기현은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하게 취급된다. 현도(縣都)인 센다이시에 총영사관이 설치돼 있다. 일본 내에 9개의 총영사관이 있는데 그중 하나다. 공항을 빠져나와 취재팀은 북쪽으로 향했다. 마침 도호쿠 6현에 10년 전처럼 마쓰리가 벌어지던 시기. 우리는 미야기의 맛과 올레를 위해 마쓰리를 포기했다.

센다이의 명물은 보통 규탄을 든다. 소 혀(tongue)를 뜻한다. 소(牛, 일어발음 규)+ton=규탄이 된 것이다. 조어 과정을 봐서 예측할 수 있지만 오래된 요리는 아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소고기를 먹게 된 것이 1900년대 초반이니 그 부산물인 혀 같은 내장 먹기가 일반화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그런데도 센다이의 집중적인 홍보로 센다이 하면 규탄을 떠올리게 됐다(적어도 일본인들은). 규탄은 이번 취재에선 열외. 다른 특산물을 먹어보기로 했다. 즌다모치, 즌다셰이크 같은 간식거리가 눈에 띈다. ‘즌다’란 ‘으깨고 찧는다’는 뜻이다. 즉 완두콩을 으깬 형태. 이것을 찹쌀떡인 모치에 묻혀내는 게 즌다모치다. 보통 팥을 쓰는데, 녹색의 즌다모치 맛이 부드럽고 산뜻하다.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즌다셰이크. 우유 맛이 좋아서인지 완두콩 으깬 것을 넣어 만든 셰이크가 입에 붙는다. 이것을 파는 특산물점 코너에 줄이 길다. 확실히 일본의 각 지역은 자기만의 상품을 잘 만든다. 평범할 수 있는 재료로 사람을 매료시킨다. 별거 아닌 것도 원래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면 뇌에 각인되는 PR 방법이랄 수도 있겠다.

섬들의 환상적 풍경 마쓰시마

마쓰시마. 일본의 3대 경승지. 이 일대를 걷는 올레길이 만들어졌다. 미야기현에는 ‘미야기 올레’라는 이름으로 두 개의 올레길이 먼저 생길 예정이다. 현재 준비가 거의 완료됐으며, 10월7일 개장한다. 취재팀은 이 길을 먼저 걸어봤다. 마쓰시마 지역은 오쿠마마쓰시마 코스가 전장 10㎞, 소요시간 4시간짜리로 설계됐다. 마쓰시마의 절경을 바라보는 최상의 코스다. 동행한 제주올레 일본지사장 이유미 씨는 “규슈, 몽골에 이어 해외에 수출된 세 번째 올레가 미야기입니다. 이번 코스는 매우 박력 있으면서도 바다를 조망하는 코스가 특별히 대단합니다.” 말대로,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환상적이고, 바다는 마치 거대한 호수처럼 잔잔하다. 코스 중에 여러 개의 뛰어난 포스트가 이어지는데 해발 105m인 오타카모리를 빼놓으면 안 된다. 정상에 서면 마쓰시마만과 태평양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코스를 마치고 묵는 숙박이 명물이다. 우리는 사쿠라소라는 민숙(民宿)에 묵었다. 개인이 경영하는 소박한 숙소라고 보면 되는데, 값도 싸고 무엇보다 주인 내외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날그날 어획한 것이 밥상에 올라온다. 저녁과 아침 두 끼와 숙박을 제공하는데, 음식값만 해도 숙박비(7600엔·약 8만원 미만, 주말에는 1000엔 추가)를 뽑는다(?)고 할 정도. 소박한 주인 내외의 심성도 마음에 든다.

두 번째 코스는 게센누마 가라쿠와 코스. 역시 거리 10㎞에 5시간 정도가 걸린다. 마쓰시마 코스가 안온하다면, 이곳은 박력 넘치고 거친 바다를 볼 수 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파도가 기암과 절벽을 때린다. 이런 곳에 길이 나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 스타지 지점을 지나면 2011년 쓰나미로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올려진 큰 암반을 볼 수 있다. 90t 정도 나간다고 하니, 당시의 위력을 실감케 하고, 그것을 이겨내고 부흥한 미야기현민이 대단하다고 할 밖에. 사실 쓰나미는 이 지역에서 평균 37년에 한 번 온다고 한다. 그만큼 대비가 잘 돼 있고, 경고 시스템도 좋다.

취재팀의 마지막 방문지는 나루코온천지역. 유황 성분이 엄청나게 강해 탕치(질병 치료 목적의 온천) 효과가 강한 온천으로도 유명하다. 온천 지역 맨 위쪽에 대중탕이 있는데, 숙박하지 않고 가볍게 목욕만 할 수 있다. 센다이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제이알(JR) 나루코(鳴子)역이 온천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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