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중국 새장경제 이면을 제대로 봐야

입력 2018-08-27 17:10  

경제를 정치 틀에 가두고 관리하는 중국
기업은 권력의 횡포에 무방비일 수밖에
무역전쟁과 무관하게 對中투자 신중해야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당초 결연한 대응을 천명했던 중국은 7월 미국의 관세 부과 후 1개월 만에 벌써 그로기 상태로 몰리고 있다. 미국의 잽 한 방에 휘청거리는 중국의 허약한 모습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진다. 향후 무역전쟁의 경과와는 무관하게 한국 기업의 중국 시장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재고해야 할 이유다. 대외적 갈등은 시간이 흐르면 해소되기 마련이지만, 중국 경제가 내포한 근본적 문제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자유로운 시장(市場)경제가 아닌 사회주의 통제 방식에서 발생하는 모순이다. 중국 공산당의 경제운용은 경제라는 새를 정치라는 새장에 가두고 관리하는 조롱론(鳥籠論)에 입각하고 있다. 정치권력이 민간 시장을 입맛대로 주무르는 조롱론에 따른 ‘새장경제’에서 기업활동은 제약받게 마련이다. 또 새장 안의 참새가 칠면조로 커졌는데 새장이 그대로라면 모순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1979년 개혁개방 정책을 천명하면서 시동을 건 경제성장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가속화됐다. 한국 기업에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잠재력에 지리적 인접성과 문화적 유사성까지 결부되면서 중국 열풍이 몰아닥쳤다. 중국 경제 전문가는 물론 인문학자, 소설가들까지 가세해 중국에 대한 장밋빛 희망을 증폭시키면서 식당에서 반도체 공장까지 규모를 막론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투자가 이뤄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투자 실패와 철수가 빈발했고 성공적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의 잠재력을 매력으로 외국 기업의 투자를 성사시킨 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각종 법규를 내세워 정상적 기업활동을 제한했고, 이해당사자 간 분쟁과 갈등에 대한 합리적인 법적 제도적 구제절차도 미비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마트다. 한국의 안보 문제인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빌미로 중국 정부는 100일간 쥐 잡듯이 소방점검을 실행하고 전국 점포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집요한 보복이 계속되면서 롯데마트는 결국 헐값에 자산을 매각하고 철수했다. 또 사드 보복의 연장선에서 지난달 베이징 도심 경관 정비를 이유로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삼성, 현대자동차 등의 광고판을 일거에 철거했다. 당초 베이징시 당국의 요청으로 설치했고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불문곡직이었다.

이런 사례는 비단 한국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달 미국을 방문한 대만 총통이 잠시 들른 대만계 커피체인점 85℃의 중국 본토 매장에 갑자기 단속반이 들이닥쳐 위생점검을 명목으로 트집을 잡았다. 소위 국가 공권력이 기업 외적인 문제를 빌미로 개별 민간기업의 영업을 공개적으로 방해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기업 차원에서 관전 포인트는 사유재산권과 법치의 확립에 있다. 사유재산권이 제한되고, 근대적 개념의 법치가 확립되지 않은 사회주의 새장경제에서 민간기업은 정치권력의 자의적 판단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기업 차원에서 현지인 네트워크인 관시(關係)를 구축해도 한계는 분명하다. 중국사회의 특성이라는 관시도 법치가 확립되지 않은 전근대적 체제에서 개별적 경제주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형성된 사적 담합관계가 본질이다. 결국 더 강한 권력자에게 밀리기 마련인 중층적 먹이사슬 구조다.

한국의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미·중 무역전쟁 국면이 지나가면 중국 경제가 거대한 시장을 기반으로 다시 성장하리라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업들은 소위 전문가들이 기존 사고방식의 경로 의존성에 매몰돼 있지 않은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현재의 어려움이 경기변동적인 순환적 문제라면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식 통제에 기반한 새장경제 체제 자체에서 잉태된 구조적 모순이 본질이라고 판단된다면 앞으로 막연한 기대를 접고 중국 투자에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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