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죽음과의 입맞춤 그리고 생명존중

입력 2018-08-27 18:41  

성명기 < 여의시스템 대표·이노비즈협회장 smk@yoisys.com >


대학 졸업 후 3년 만에 창업했다. 29살이 채 되기 전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이었다. 그런데 창업 후 불과 10개월 만에 온 가족이 상상하기도 끔찍한 재앙에 봉착했다. 2살 반인 큰아들이 백혈병에 걸렸고 임신 6개월이었던 둘째가 유산됐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골수이식으로 큰아들을 살리려고 다시 아이를 가졌고 둘째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날벼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인 내가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라간 때가 둘째가 태어난 지 10개월 만이었다. 1983년 창업한 이듬해 첫째의 백혈병부터 1986년 나의 위암 수술까지. 그때 우리 가족은 죽음의 그림자를 꿈속에서까지 만났다. 경제적으로는 빚더미에 올랐다.

아내와 나는 그 시절에도 서로 격려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 내겐 아내와 투병 중인 맏아들, 10개월 된 둘째 아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여자근로정신대로 끌려갈 뻔했던 노모가 있었다.

빚더미에 죽음의 그림자가 연속해 드리웠지만 단언컨대 나와 아내는 단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병을 이겨낸다면 그까짓 빚도, 적자가 나는 회사도 모두 해결되리라 믿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빚은 오래전에 다 갚았다. 지금은 기술 강소기업 경영자인 데다 이노비즈협회장이란 봉사의 자리까지 얻었다. 이에 더해 집에서 손녀 재롱을 보는 복까지 누리고 있다. 작년 11월은 위암 수술을 받은 후의 기간이 수술을 받기 전 살았던 기간을 넘어서는 역전의 시점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가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압축 성장에 따른 상대적 빈곤감이 만연하면서 ‘자살공화국’이 됐다고 한다. 이에 더해 사회 지도자들이나 지식층, 연예인들의 자살이 이런 풍조에 불을 지른 것 같다. 마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이후에 자살이 줄을 이었던 것처럼.

어떤 경우에도 자살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하는 풍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살아가면서 최고의 선은 생명 존중과 사랑이다. 실천의 첫걸음은 자신의 생명부터 지키는 것이다.

20대 때부터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한 우리 부부에게 행복이란 큰 것이 아니다. 밤늦은 시간에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고, 집 앞 정원에 핀 예쁜 꽃을 보고, 아들·며느리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손녀의 울음소리와 함께하는 평범한 하루. 주말이면 소중한 벗들과 함께 산과 암벽을 오르고, 때로는 오지로 배낭여행을 할 수 있고, 지구촌 이웃에 작은 봉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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