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우물 안 재벌개혁

입력 2018-08-2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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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은 자국 기업 지원에 '올인'
한국은 갖가지 규제로 투자 손발 '꽁꽁'

좌동욱 산업부 차장



[ 좌동욱 기자 ] “‘인도의 매사추세츠공대(MIT)’로 불리는 인도공과대(IIT) 졸업생을 뽑기 위해 지난 10년간 갖은 애를 썼다. 하지만 졸업 성적 100등 이내 핵심 인재는 단 한 명도 데려 올 수 없었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최근 사석에서 들려준 얘기다. IIT는 13억 명에 이르는 인구대국 인도 전역에서 1만 명만 진학할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이다. 이 학교의 핵심 인재를 싹쓸이하는 기업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인텔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혁신기업들이다.

IIT뿐만이 아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율주행 자동차 등 신산업을 연구하는 선진국의 내로라하는 대학 석학들도 이들 정보기술(IT) 기업이 ‘입도선매’하고 있다. 소수의 천재급 박사가 산업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도 파격적이다. 대학에서 회사 지원으로 연구를 계속하면서 수십억원의 연봉을 별도로 받는다.

이런 인재들에게 삼성전자는 여전히 아시아 변방의 신흥 IT 기업이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도 극복하기 쉽지 않은 ‘핸디캡’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입사를 고민했지만 한국 본사 경영진에게 최종 인터뷰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깨끗하게 포기했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살아있을 때 애플에서 17년간 광고와 마케팅을 책임졌던 켄 시걸 전 애플 크리에이티브디렉터가 들려준 에피소드다. 아무리 많은 연봉을 제시해도 한국 본사 경영진으로부터 받는 통제는 꺼려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간판 기업들은 이런 핸디캡을 안고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한눈 팔다가는 순위권 밖으로 순식간에 밀려난다. 1등을 하면 글로벌 시장 이익을 독식할 수 있다.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 기업들을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는 배경이다.

국내 최고 통상전문가인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중 통상분쟁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에서 시작됐다는 얘기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전했다. IT와 금융이 결합한 알리바바의 금융결제 시스템(알리페이)이 미국 시장에 소리 소문 없이 퍼지는 것을 목격한 미국 정부가 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 정반대다. 대기업의 금융산업 진출을 막는 금산분리 규제가 세계에서 가장 촘촘하다. 글로벌 금융과 무역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한국 정부의 투자 규제와 기업 옥죄기는 여전하다 못해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다. 기업의 성장과 확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글로벌 혁신기업을 상징하는 구글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안드로이드, 유튜브, 딥마인드테크놀로지 등 3대 핵심 사업을 죄다 M&A로 얻었다. 다들 구글의 안목과 실행력을 칭송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크다는 이유로 갖가지 규제를 받는다.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산업의 경계와 기득권을 없애고 글로벌 단위의 경쟁을 부추긴다. 미국 중국 유럽 등 강대국에선 자국 기업의 원천기술을 상대국에 뺏기지 않으려는 ‘신중상주의’가 세를 얻고 있다. 한국에서만 유독 철 지난 ‘재벌 개혁’ 구호가 넘쳐난다. 앞으로 나아가도 시원찮을 판에 자꾸 제자리 뛰기를 하게 하고 있다. 개혁도 기업이 건강하고 온존해야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정책이 한쪽 방향으로 과도하게 쏠리면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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