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외부자 시선

입력 2018-08-3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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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1973년 10월 초, 이스라엘군은 아랍군이 국경으로 접근하는 걸 발견하고 보고했다. 지휘부는 통상적인 훈련으로 판단했다. 며칠 후 아랍군의 파상공세가 시작됐다. 전멸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이스라엘은 이후 전략회의 방식을 바꿨다. 10명 중 9명이 찬성하더라도 1명의 반대 의견을 반드시 듣도록 했다. 이른바 ‘열 번째 사람(the tenth man) 원칙’이다.

획일적인 찬성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반대 의견을 말하는 ‘열 번째 사람’은 사방의 적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을 강국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 이 원리는 13세기 로마 교황청의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에서 나왔다. 외부인의 눈으로 성인(聖人) 후보자들의 흠집을 찾아내는 게 이들의 임무였다.

미국에서는 이를 ‘레드 팀(red team)’이라고 부른다. 정책이나 작전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측을 ‘블루 팀(blue team)’으로 가정하고, 반대편에서 문제점을 찾기위해 구성한 가상의 적군이다. 한마디로 조직과 리더에게 ‘쓴소리’를 하는 직언그룹이다. 2001년 9·11 테러 뒤 군사·안보 분야에 도입돼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 등에서 큰 효과를 봤다.

정치 부문에서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이 방식을 먼저 활용했다. 그는 정적까지 내각에 참여시킨 ‘라이벌들의 팀(team of rivals)’을 통해 강한 미국의 토대를 닦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링컨의 전기를 읽고 난 뒤 경선 상대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앉혔다.

글로벌 기업들도 ‘외부자 시선’을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활용한다.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는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하는 사내 비밀 벤치마킹팀을 구성했다. 구글과 넷플릭스도 치열한 ‘반대 토론’에서 위험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며 새로운 길을 찾았다. 마크 앤드리슨 넷스케이프 창업자는 “내 성공 비결은 레드 팀에 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그들은 내가 놓친 것을 철저하게 파헤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뛰어난 조직에는 이처럼 통념과 상식을 뒤집어 다른 답을 찾아내는 팀이 있다. ‘외부자 시선’이 없으면 한쪽밖에 보지 못하는 외눈박이나 눈이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가 된다. 반면에 위험을 지적해도 리더가 들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말을 해도 반영되지 않으면 구성원 모두가 입을 닫아버리는 ‘조직 침묵 현상’에 직면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외부자 시선’을 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몸에 좋은 ‘약’이 아니라 ‘독’으로 여기기 일쑤다. 권력자가 비슷한 신념의 ‘확증편향 집단’에 둘러싸여 있을수록 더 그렇다. 나라 안팎이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레드 팀’과 ‘열 번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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