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주가 올라 울상인 기업들?

입력 2018-08-31 14:32   수정 2018-08-31 14:36

코스닥 업계에선 "별도 예외 규정 필요하다"
거래소 "리픽싱 조항은 필수 요건 아닌 만큼 회사가 조정해야"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으로 자금을 조달했던 코스닥 상장사들이 주가가 올라도 울상을 짓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으로 전환가액 조정(리픽싱) 조항이 들어간 CB, BW는 파생상품손실로 분류돼 당기순손실을 야기하고 있어서다. 코스닥 상장 예정기업도 당기순손실을 내고, 첫 자본잠식에 걸린 상장사도 나오면서 거래소가 공시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7일 상장 예정인 코넥스 기업 디지캡은 상반기 당기순손실 8억원을 기록했다.

보통 상장을 앞둔 기업들이 적자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래에 더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될 때 상장을 결정하기 때문에 상장 전 손실을 정리하고 체력을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디지캡이 순손실을 기록한 것은 교환사채(EB) 때문이었다. 지난 4월 디지캡은 8000원에 20만주 규모로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현재 IFRS 상에선 전환가액 조정(리픽싱) 조항이 들어간 CB, BW 등은 파생상품으로 분류된다.

한승우 디지캡 대표이사는 "자사주 58만주 중 20만주를 교환사채로 발행하는 과정에서 6350원에 자사주를 사들여서 8000원에 팔아 이득을 봤지만,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상장을 신청하자 주가가 오르면서 문제가 생겼다"며 "(주가 상승으로) 파생상품 기준가도 1만2000원으로 조정되면서 숫자 상으로 8억원 손실이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8억원은 조정된 교환가액(1만2000원)에서 8000원을 뺀 4000원에 20만주를 곱해서 산출된 값이다.

문제는 코스닥 상장 후 주가가 오르면서 당기순손실이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모가액은 1만2000원으로 정해졌지만, 지난 28~29일 진행된 일반투자자 청약경쟁률은 931.796대1에 달했다. 현재 코넥스시장에서 전날 디지캡의 종가는 1만4900원이었다.

한 대표는 "코넥스에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이 코스닥에 가면 2만원이 넘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들도 나오는데 2만원으로 EB의 교환가액이 조정되면 순손실은 24억원이 된다"며 "주가가 오르면 기업도 좋고 주주도 좋은 게 맞는데 주가가 오르면 오히려 기업이 망하는 아이러니가 나타나게 된다"고 꼬집었다.

◆상장사도 적자전환에 자본잠식까지…거래소 "조기상환 등 회사 자체 노력 가능"

이미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들도 주가 상승으로 기존의 CB와 BW가 리픽싱되는 과정에서 파생상품손실을 기록,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 상반기엔 처음으로 파생상품손실로 자본잠식에 빠진 기업도 나왔다. 와이오엠은 상반기 기준 당기순손실 259억5247만원을 기록하면서 부분 자본잠식 사유로 관리종목에 지정됐다. 와이오엠은 지난 5~6월 두 차례에 걸쳐 총 23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바이오 사업에 진출해 안티에이징 신약 연구 개발 사업 추진을 위해서였다.

국내 테슬라 상장 1호 기업인 카페24도 파생상품 손실로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상반기 당기순손실은 478억7100만원을 기록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72억4400만원으로 전년 상반기보다 182.65% 늘었다. 회사의 실적은 좋아졌지만 파생상품 손실로 큰 규모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한 것이다.

카페24 관계자는 "갑자기 큰 규모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데 대한 투자자들의 문의가 많았다"며 "실적 발표 후 주가도 출렁임이 있었다"고 말했다.

코스닥 업계에선 파생상품손실에 따른 자본잠식을 관리종목지정 사유 예외로 해준다는 등 별도 예외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성장성이 악화돼 자본잠식을 받은 기업과는 당기순손실 악화의 질이 다르다는 점에서다.

변영인 와이오엠 이사는 "자본잠식 해결을 위해 유상증자 등을 강구하고 있지만, 유상증자를 하더라도 주가가 오르면 잠식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셈이 되버려서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며 "파생상품손실 확대로만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 관리종목지정, 자본잠식 예외사유로 지정하는 등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할 듯 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상장사 공시 담당자도 "전환사채를 발행해도 주가가 크게 오르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상장사가 주가를 인위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 만큼 애로사항이 크다"고 했다.

회계업계도 투자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정 부분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회계사는 "파생상품 손실 때문에 자본잠식, 적자를 보더라도 이에 대해 모르는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에 거래소가 도와주긴 해야할 것 같다"며 "우리나라에서 전환사채가 활성화돼 있는 만큼 향후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기업들이 더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회계사는 "현재로선 기업들이 별도로 실현된 손실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공시해 투자자들 오해를 해소해야 한다"며 "주로 사모로 발행되는 CB의 특성상 사채권자도 회사가 완전자본잠식이 되거나 상폐사유가 되는 건 불리하기 때문에 조기상환 등 해결 가능한 여지도 있을 듯 하다"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는 사채권자와 협의해 조기상환 등 해소 방안이 있는 만큼 별도 예외 규정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코스닥 공시제도팀 관계자는 "파생상품 손실이 자기자본 비중의 10%가 넘으면 별도 공시를 해야 하는 등 투자자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적극적인 공시 방안은 마련돼 있다"며 "전환사채는 전환되기 전 회사가 전환권을 사들여 풋백이나 풋옵션도 부여할 수 있고, 리픽싱 조항이 의무가 아닌 만큼 회사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직 많은 상태"라고 밝혔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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