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표 악화 등 우려 전달
'J노믹스' 혁신 정책 설계했지만
평소 정부 경제정책에 쓴소리
김동연 부총리와 경기진단 설전도
페이스북에 '자진 사퇴' 암시했다
보도된 후 부인하는 글 올려
[ 이태훈 기자 ]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지난 30일 문재인 대통령을 한 시간가량 단독 면담했다. 김 부의장은 이 자리에서 일자리 등 경제지표가 악화된 데 우려를 나타내며 “소득주도성장에 매몰돼선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문 대통령에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의장이 문 대통령을 단독 면담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 5월 요청해둔 면담이 3개월여 만에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줄곧 ‘쓴소리’를 해온 김 부의장이 문 대통령을 독대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정책 방향 수정을 건의하는 고언이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런 관측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단독 면담 사실을 공개하며 진화에 나섰다.
“소득주도성장에 매몰돼선 안 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브리핑에서 “김 부의장은 국민경제자문회의 활동 상황을 보고했고 향후 운영방안에 대해 말했다”며 “김 부의장이 ‘국민경제자문회의 회의를 곧 열 테니 대통령이 참석해달라’ ‘장하성 정책실장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자주 방문해달라’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또 “김 부의장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게 사람 중심 경제의 한 부분이다. 소득주도성장 논쟁에만 매몰되지 말고 사람 중심 경제라고 하는 큰 틀에서 이야기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의장이 경제정책 방향 수정을 완곡하게 건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부의장은 그동안 정부 경제정책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5월 경기 진단을 놓고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설전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기재부가 경제동향(그린북) 5월호에서 “경기는 회복 흐름”이라는 진단을 내놓자 김 부의장은 페이스북에 “(기재부 설명이) 믿어지지 않는다. 여러 지표로 봤을 때 경기는 오히려 침체 국면 초입 단계에 있다”고 썼다. 김 부총리가 “월별 통계를 갖고 (경기를) 판단하기엔 성급한 면이 있다”고 반박하자 김 부의장은 “현재 눈에 보이는 통계적 현상은 경제가 구조적으로 잘못돼 가고 있는 상황의 결과”라고 되받아쳤다. 김 부의장은 이후에도 일자리 악화에 대해 정부와 청와대가 인구구조 등의 이유를 언급하자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개인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부의장 직 계속 수행할까
김 부의장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캠프에 뒤늦게 합류했다. “경제 분야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달라”는 당시 문 후보의 삼고초려 끝에 합류를 결정했다고 한다. 김 부의장은 캠프에 들어가 ‘사람 중심 경제’라는 개념을 만들고 ‘J노믹스(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문 대통령은 당선 후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자리에 그를 앉혔다. 의장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사실상 김 부의장이 책임자다. 현 정부 초기에 “김 부의장이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주재한 국민경제자문회의는 딱 한 번 열렸다. 작년 12월27일 개최된 뒤 8개월이 넘도록 두 번째 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김 부의장과 현 정부의 ‘동거’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 부의장도 최근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대통령은 귀를 열어 다른 의견도 잘 듣는데, 청와대 참모들은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는다”며 부의장직을 내려놓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부의장은 문 대통령을 만나기 사흘 전 페이스북에 “Not every place you fit in is where you belong(당신이 소속된 곳이 잘 맞는 곳이 아닐 수도 있다)”이라고 사퇴를 암시하는 듯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김 부의장은 이날 문 대통령 단독 면담 사실이 알려진 뒤 페이스북에 해명 글을 올려 ‘사의 표명설’을 스스로 진화했다. 그는 “문 대통령을 면담한 사실은 맞지만 (정책 방향 수정을 고언했다는) 기사 내용은 평소 내 주장을 바탕으로 추측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과의 면담에 관한) 전체적인 내용은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과 부합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김 부의장이 아직 미련이 남아 좌고우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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