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달러 부채 상환 임박… 다음 금융위기 후보국은

입력 2018-09-02 19:13  

아르헨 이어 印尼·멕시코 등 위험
對美관계 불편한 이란·터키는
IMF 구제금융 받기도 쉽지 않아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됐다. 그동안 1980년대 후반 선진국 주식시장(블랙먼데이), 1990년대 후반 신흥국 통화시장(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대 후반 선진국 주택시장(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점을 감안해 2010년대 후반에는 금융위기 후보지로 신흥국 상품시장이 지목돼 왔다.

지난 3월 이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에 이어 이란, 터키 등이 잇달아 외자 이탈에 시달리면서 금융위기 재연 조짐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오히려 악화되는 분위기다. 모두 상품가격에 민감한 신흥국이다.

지난 10년 동안 늘어난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시기에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금리차와 환차익을 겨냥해 이동하는 캐리자금도 네거티브 트레이드 여건이 형성돼 달러계 자금을 중심으로 외자 이탈이 가세하고 있다. 신흥국의 미숙한 정책 대응도 문제다. 외자 이탈을 수반한 달러 부채 상환에 가장 적절한 대책은 외환보유 확충과 외자조달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지난 3월 이후 금융위기 조짐에 시달리는 대부분 신흥국은 금리 인상으로 대처해오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정책(기준)금리를 연 60%까지 올렸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외면한 금리 인상은 실물경기 침체와 추가 외자 이탈 간 ‘악순환 고리(vicious cycle)’를 형성한다. 20년 전 태국,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가 겪은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배경이다. 벌써 일부 신흥국은 이런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 예의 주시해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은 올해 안에 2000억달러, 내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4000억달러 이상의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온다. 지난 3월, 6월 회의에서 두 차례 금리를 올린 Fed는 이달과 12월 회의에서 추가적으로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 외화 사정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대발산(GD: great divergence)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GD가 일어났던 1994년 이후 상황을 보면 독일의 분데스방크(유럽중앙은행 창립 이전에 유럽 통화정책의 중심 역할)는 금리를 연 5.0%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연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미국 경제도 견실했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이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고성장 속 저물가’라는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 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달러 강세 시대가 전개됐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이른바 ‘그린스펀 쇼크’)가 발생했다. 미국과 유럽 등 다른 국가 간 금리차가 벌어지고 감세, 리쇼어링 등으로 또 다른 신경제 신화를 쌓아가는 미국 경제의 지금 상황과 비슷하다.

지난 7월 말을 기준으로 IMF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지표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이 활용하는 외환상환계수로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을 점검해보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터키, 파키스탄, 이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높게 나온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필리핀,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은 그 다음 위험국이다.

금융위기 발생 고위험국으로 분류되는 중남미 국가는 외채위기로 학습효과가 있는 데다 미국과의 관계(베네수엘라 제외)도 비교적 괜찮다. 하지만 이란, 터키처럼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거나 협조하지 않는 국가와 중국에 편향적이거나 일대일로 계획에 과도하게 참여하는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과 같은 이슬람 국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더라도 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IMF의 최대 의결권을 미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내외 금융시장에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차기 금융위기가 어느 국가에서 발생할 것인가’는 이런 각도에서 따져보면 어느 정도 감(感)을 잡을 수 있다. 유엔의 수출 통제 품목인 북한의 석탄 수입이 공식화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흐트러지고 있는 한국은 과연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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