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장 이전 강제집행 또 무산
상인들 "신시장 좁고 비싸" 버티기
2년간 손실만 218억 달해
수협 "법원에 강제집행 재요청"
법원, 수협에 손 들어줬지만
구시장 상인 반발에 사태 장기화
전문가 "갈등조정기구 마련을"
[ 성수영 기자 ]
“이렇게 법을 우습게 알고 막무가내로 버티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서울중앙지방법원 A 집행관)
6일 새벽부터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구(舊)시장은 민중당 관계자,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주노련) 회원 및 구시장 상인 등 500여 명으로 가득 찼다. 지난달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따라 상인들이 불법 점유하고 있는 부대·편의시설 294곳을 대상으로 이뤄질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서였다.
오전 9시부터 서울중앙지법 집행관과 노무 인력 300여 명이 주차장 등 3개 방면으로 일제히 진입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고성과 몸싸움에도 집행관들은 끝내 반대 측의 ‘스크럼’을 뚫지 못했다. 철수하는 인력 뒤로 경찰의 “집행을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방송만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법원은 지난해 4월과 올 7월에도 일부 상인을 대상으로 집행을 시도했다가 반발에 막혀 빈손으로 물러서야 했다.
◆수협·구시장 상인 2년째 대치
2004년 정부는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에 들어갔다. 지하 2층~지상 6층 규모 신시장 건물을 지어 상인들을 이주시킨다는 게 골자다. 노후화된 구시장 건물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 수산물 유통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수협은 2009년 4월 설명회를 열고 판매 상인 80.3%와 중·도매인 조합 73.8%의 동의를 받아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건물 완공을 한 달 앞둔 2015년 9월 일부 상인이 ‘노량진수산시장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비대위에 참여한 상인들은 “판매 면적이 좁아졌는데 임대료는 구시장의 3배 이상 비싸졌다”고 주장하며 임대료 인하와 판매 자리 확대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수협 측은 “구시장에서 목 좋은 곳을 차지한 기존 상인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전을 거부하고 반발하는 것”이라며 “월 80만원 수준의 임대료는 주변 시세와 비교해도 저렴한 수준”이라고 맞섰다.
대립은 2016년 3월 신시장에서 경매가 시작되자 더욱 격화됐다. 협상이 계속 결렬되자 수협은 상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수협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달 대법원은 구시장 부지를 불법점유하고 있는 358명 전원에게 가게를 비우라는 판결을 내렸다.
◆수협·상인·소비자 모두 피해자
갈등이 격화되면서 수협과 상인 모두 피해가 커지고 있다. 양측 갈등으로 올 상반기까지 수협과 신시장 상인들이 입은 손해 규모는 218억원에 달한다는 게 수협 측 추산이다. 임대료 손실과 주차료 수입 감소 등을 반영한 금액이다. 손님 분산으로 인한 매출 감소 등까지 포함하면 피해액은 훨씬 불어난다.
계속되는 분쟁에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상인들은 지적했다.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수협 측 안내원과 구시장 상인들이 ‘호객 경쟁’을 벌이는 등 번잡한 환경 때문에 시장 이미지가 나빠져 전체 매출이 급감했다는 설명이다. 신시장 상인 김모씨(61)는 “노량진수산시장이 ‘위험하고 시끄러운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손님들이 시내 횟집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했다.
구시장 이용객의 안전 문제도 제기된다. 2004년 노량진수산시장은 건물 안전사고 위험 평가에서 안전등급 C등급을 받았다. 이날 강제집행 현장에서도 곳곳에 방치된 가스통과 바닥에 얽혀 있는 전선이 눈에 띄었다. 상인 박모씨(57)는 “지난달 말 폭우가 내리면서 구시장에서 누전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사태 장기화될 듯
이날 수협 측은 “최종 승소 이후에도 구시장 상인들이 이전을 거부해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다”며 “이른 시일 내에 법원에 강제집행을 다시 요청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구시장 상인들도 계속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 사태는 더욱 장기화될 조짐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구시장 일부 존치가 인정되지 않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협 측과 구시장 상인들이 한치의 물러섬 없이 맞서고 있는 사이 여론은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불복하며 버티기에 나선 구시장 상인들을 보는 시각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뒷짐 지는 서울시와 해당 구청 역시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한 전문가는 “민주노련 등 외부 세력을 배제한 채 지금이라도 수협 측과 상인들이 신뢰할 수 있는 갈등조정기구를 마련해 합의점을 찾도록 갈등을 중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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