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구 "경제정책 종합적 운용 실패… 최저임금이 문재인 정부 브랜드 돼버렸다"

입력 2018-09-09 18:10  

문재인 정부 '핵심 브레인'의 쓴소리

정해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장 인터뷰

정치 수준 높이지 않으면 민주당 20년 집권 힘들어
장하성 실장 정책 홍보 타이밍 늦은 것 같다

적폐청산, 사람 처벌 안돼…미래 향한 문화·제도 개선을
한국 사회정책 굉장히 낙후…'포용국가'로 국민의 삶 보장



[ 박재원 기자 ]
정해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사진)은 ‘문재인 정부의 현주소’를 묻자 곧장 메모지에 세 가지 그래프를 그렸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마주 앉아 기자에게 강의하듯 국내 정치, 외교안보, 경제·사회 등 분야를 나눠 ‘진단서’를 적어 내려갔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구체화하는’ 정책기획위원회의 수장다운 모습이었다.

◆“20년 집권? 정치 수준 높여야”

정 위원장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년 집권을 얘기하지만 현재 우리 정치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정치를 주제로 운을 뗐다. 그는 ‘촛불 혁명’으로 창출된 문재인 정부의 정치 현실도 수준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과거처럼 국회에서 폭력이 오가진 않지만 합의를 이뤄내는 과정이 국민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도 해당하는 얘기였다. 그는 이 같은 이유로 “정치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민주당의 20년 집권은) 힘들다”고 했다.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정부가 최근 다시 꺼내든 ‘적폐청산’ 기조에 관해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정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마련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치개입 문제로 논란에 휩싸인 국정원의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그는 “적폐청산은 사람을 처벌하는 대신 미래를 향한 문화와 제도를 마련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한 관계를 두고는 “지금이 고비”라고 표현했다. 미·북 관계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섰지만 각국의 수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봤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와 관련해서도 “미국의 협상 전략 중 하나”라고 풀이했다.

◆‘김&장’ 갈등, 팀워크에 부적절

국내 경제 상황에 대해 그는 “최저임금 인상이 발목을 잡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정 위원장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정책 틀을 마련해놓고 정책을 종합적으로 펴지 못해 ‘최저임금 인상’이 마치 문재인 정부의 브랜드처럼 자리잡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청와대가 단기 성과에 매몰돼 있다 보니 정책 효과를 극대화할 시기를 놓쳤다는 설명이다.

최근 정책 컨트롤타워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의 의미를 홍보하고 나섰지만 “타이밍이 늦은 것 같다”고 했다.

이른바 ‘김&장’ 갈등에도 쓴소리를 가했다. 그는 장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이의 불협화음과 관련, “실제로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른 만큼 내부에선 의견이 엇갈릴 수 있지만 외부에 그렇게 비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팀워크에 문제가 있다고 보일 수 있어 부적절했다”고 평했다.

정 위원장의 이 같은 쓴소리는 무게감이 다르다는 평가다. 그는 문 대통령의 핵심교수그룹 좌장으로 꼽힌다. 정 위원장은 18대 대선부터 문 대통령의 정책 자문 역할을 해왔다. 18대 대선 패배 후 결성된 자문그룹 ‘심천회’의 핵심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심천회에는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등이 속해 있다. 지근거리에서 문재인 정부 정책에 관여해 일각에서는 그를 문 대통령의 ‘가정교사’로 칭하기도 했다.

◆포용국가 위해 복지예산 2배↑

정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중·장기 국가 발전전략과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안착시키는 데 역량을 쏟을 계획이다. 위원회 출범 1주년을 맞아 그는 “지난 5개월간 문재인 정부의 사회정책 비전인 ‘포용 국가’의 틀을 완성했다”며 “앞으로 ‘비전 2040’ 등의 국가 장기 비전을 마련해갈 계획”이라고 했다. 일각에서 지적하듯 소득주도성장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포용 국가는 문 대통령이 지난 6일 제시한 사회정책 분야의 국가 비전이다. 문 대통령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국민의 삶을 전 생애주기에 걸쳐 책임져야 한다”며 “그것이 포용 국가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한국의 사회정책이 굉장히 낙후돼 있다”고 했다. 그는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을 예로 들었다. 2015년 기준 한국은 10.1%지만 일본은 1980년, 유럽은 1967년에 10%를 넘었다며 우리보다 예산 투입 비중이 두 배나 높은 유럽과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그만큼 사회복지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포용 국가를 위한 범부처 추진단을 세워 ‘국민 전 생애 생활보장 3개년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막대한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에는 “효과적인 재정 확보를 위해 국가재정전략회의와 연계해 정책 신뢰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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