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 기자의 한반도는 지금](북방 접경도시를 가다) ①동북아 첩보전의 중심지, 중국 선양

입력 2018-09-14 18:12  



(박동휘 정치부 기자) 북방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지였던 이곳에 경제협력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신유라시아 정책이란 이름으로 극동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러시아, 동북3성 개발을 통해 동해로의 진출을 꿈꾸는 중국, 그리고 북방경제라는 새로운 경제권역을 한반도 평화정착의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전략이 맞물리면서 ‘경제 국경’이 활짝 열리고 있다.

최근 2주에 걸쳐 북·중·러 접경도시를 다녀왔다. 그곳에선 기대와 희망이 부풀고 있었다. 동시에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꼈던 취재 여행이기도 했다. 각 도시별 취재기를 연재한다.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인 선양(瀋陽)은 동북아 최대의 첩보전이 벌어지는 곳이다. 남북한을 비롯해 중·러·일 등 한반도 주변 열강이 파견한 공작원들의 주요 무대다. 북한 ‘해킹부대’의 근거지로 알려진 칠보산호텔도 선양 중심가에 있다. 국제제재로 인해 문을 닫아야했던 칠보산호텔은 얼마 전 이름을 바꾼 채 개장했다.

선양은 만주 요동벌판의 중심지다. 이곳을 차지한 역사 속 수많은 나라들은 흥과 쇠를 반복했다. 우리 역사 속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고구려의 땅일 때도 있었고, 한때는 발해의 세력권이었다. 한족(漢族)이 강성했을 땐 그들의 차지였으나, 유목 기마민족이 한무리를 이뤄 침범하면 그들의 ‘게르’가 곳곳을 차지했다. 두 세력 모두가 약할 때에나 한반도인(人)은 선양을 점유했다.

중국 동북3성의 최대 도시인 오늘날의 선양에서 옛 자취를 찾기란 쉽지 않다. 높게 뻗은 빌딩 숲과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의 열기는 선양을 글로벌 ‘메가시티’로 바꿔놓고 있다. 한가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선양의 입지적 중요성이다. 눈을 가로막는 도시의 산물들을 상상 속에서 지워보면 만주 요동벌판의 지평선이 눈에 잡힐 지도 모를 일이다. 사통팔달,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이 선양이다. 그래서 동북아 첩보원들은 대개 이곳을 거치거나 이곳에 거주한다.

선양의 번영은 청나라를 건국한 누루하치로부터 시작됐다. 여진족을 통합해 명의 심장을 노리기 위해 누루하치는 1625년에 수도를 선양으로 옮겼다. 천도 의지를 천명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양은 지리적으로 더없이 뛰어난 곳이다. 서쪽으로 명나라를 공격할 때는 요하만 건너면 탄탄대로에 가깝고, 북으로 몽고를 정벌할 때도 2~3일이면 다다를 수 있으며, 남으로 조선을 정벌할 때는 청하 길목을 이용해서 공격할 수 있다’

누르하치와 그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皇太宗)에게 조선은 늘 눈엣가시였다. 산해관을 넘어 명의 심장, 베이징을 점령하려면 무엇보다 배후를 안전하게 해야했다. 홍타이지가 병자년(1636년)에 직접 대군을 이끌고 조선 정벌에 나선 것은 필연일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의 결과, 조선의 임금은 수십만명의 볼모를 선양으로 보내야했다. 소현세자는 지금의 한인 거주지역인 서탑 어딘가에 세자관을 짓고, 오랑캐의 나라 청의 눈부신 발전을 지켜봐야했을 것이다. 소현세자가 있던 곳은 오늘로 치면 주중 대사관이나 마찬가지였다. 왕의 아들과 그를 따른 많은 이들은 청을 정탐했고, 청은 그들을 통해 한반도를 좌지우지하고자 했다.

치욕의 세월로부터 벌써 4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만주족이 세운 정복왕조는 서양의 침략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외세가 물러난 이후에도 중국은 오랜 세월 변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역사를 불태우고, 서로를 죽였으며, 이념의 포로로 수십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다. 그랬던 중국이,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족이 강대함을 되찾았다. 홍타이지가 산해관을 넘기 위해 거점으로 삼았던, 성경이라 불리던 선양은 중국 ‘일대일로(육·해상을 아우르는 물류 네트워크)’의 동북 관문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베이징에서 출발한 고속열차는 선양을 거쳐 동북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선양에서 동남쪽으로 1시간 20분 정도만 달리면 단둥(丹東)에 다다를 수 있다. 단둥에선 신의주 땅이 지척이다. 중국은 그들의 땅에서 수십, 수백번 쌓은 경험으로 압록강을 건너는 고속철을 평양까지 깔아주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스스로를 ‘조선’이라 부르는 북한은 중국의 야욕 앞에 어떤 선택을 할 지 고민 중이다. 차항(借港)을 넘어 나진 등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창항출해(創港出海, 항구를 확보해 바다로 나간다)의 꿈을 실현하려는 중국의 야심은 이곳 선양에서 불타오르고 있다. (끝) / donghuip@hankyung.com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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