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두현 기자 ] 최용해(崔龍海)냐 최룡해냐, 이용남(李龍男)이냐 리룡남이냐….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표기법 논란이 일고 있다. 언론사들의 보도기준과 정부 부처들의 의견이 다르다. 어제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북한 권력 실세 ‘최용해/최룡해’, 경제 담당 내각 부총리 ‘이용남/리룡남’의 인명 표기가 제각각이었다.
이런 일이 벌이지는 것은 북한이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음법칙은 첫소리에 ‘ㄴ’과 ‘ㄹ’을 쓰지 않는 것으로, 인명과 고유어 모두에 적용된다. 북한은 이를 무시하고 여자를 ‘녀자’, 노인을 ‘로인’, 냉면을 ‘랭면’으로 표기한다. 우리 측 이낙연(李洛淵) 총리까지 ‘리락연’이라고 적는다.
북한이 처음부터 두음법칙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된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는 남한과 같은 규범을 썼다. 1966년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조선말규범집’이 나온 뒤로 남북 간 차이가 생겼다. 이제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30%에 이를 정도다.
정부 부처 간에 엇박자가 나오고 있다. 통일부는 2011년 우리 국문법에 따른 북한 인명에 북한식 표기를 괄호 안에 병기하기로 했다가 이듬해 북한식으로 변경했다. 북한 인물을 우리 식으로 표기하면 정보 분석 과정에서 혼란이 생긴다는 게 이유였다. 고유명사는 현지 발음대로 표기하는 게 맞다고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 고유명사를 존중하지 않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마저 ‘습근평’으로 표기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2013년 “북한 고유명사 표기 시 두음법칙을 적용해야 한다”며 ‘량강도’는 ‘양강도’, ‘로동신문’은 ‘노동신문’으로 쓸 것을 명시했다. 두음법칙이 일제 잔재라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있었다. 자연스러운 발음을 원하는 현상을 규범화한 것이지, 없는 현상을 만든 것이 아니다. 없는 현상을 새로 만들어 낸 것은 북한이다.
남북 언어학자들은 2005년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를 결성해 혼란을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북한의 잇단 핵실험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한 건물에 두 현판이 걸리는 촌극이 빚어졌다. 며칠 전 개성공단에 개설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1층 현관에는 ‘공동련락사무소’, 건물 오른쪽 위에는 ‘공동연락사무소’라는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국어학자인 고영근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말은 한국어와 조선어(북한·중국 동포의 말), 고려어 등으로 분화한 것을 모두 포괄한다”며 “남북한의 정체(政體)가 통일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언어문화는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뉴스를 전하는 언론부터 우리말에 맞는 표기법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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