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비핵화 협상 재개
美 전문가들 회의적 시각
"핵무기·핵물질·미사일 포기 등
의미 있는 실질 조치는 피해
美 상응조치도 뭔지 불확실"
[ 유승호 기자 ] 미국의 대북 문제 전문가들은 3차 남북한 정상회담 결과물인 9·19 평양 공동선언에 대해 “북한이 일부 진전된 입장을 내놨지만 함정이 숨어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뜻을 밝혔지만 문맥을 뜯어보면 비핵화 협상을 어렵게 하는 ‘악마의 디테일’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리스트 신고를 언급하지 않은 점과 △핵시설 폐기의 전제로 ‘미국의 상응 조치’를 거론했지만 이것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점 등을 악마의 디테일로 꼽았다. 앞으로 열릴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 선택한 조치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미국이 그동안 요구해온 핵물질과 핵탄두, 핵시설 등 ‘핵 리스트 신고’는 언급하지 않은 일방적인 선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담당 조정관은 “북한은 영변 외에도 핵무기 생산을 위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며 “영변 핵시설 폐기가 핵개발 중단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폐기 등은 ‘미래 핵’일 뿐 미국이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현재 핵’이 아니라는 지적도 많았다. 애덤 마운트 미 과학자연맹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기존 무기에 대해선 축소나 신고 등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정치학과 교수는 “김정은이 지금까지 제안한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달래기에 충분하면서 큰 비용은 들지 않는 것들”이라며 “핵무기와 핵물질, 미사일을 포기하는 의미있는 조치는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변 핵시설 폐기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이 제기한 미국의 상응 조치가 어떤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상응 조치 요구는 북한의 비핵화 이행과 미국의 보상을 단계별로 진행하자는 북한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진전된 내용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이 매우 강력한 조건을 요구한 것”이라며 “주한미군 철수 등 한·미 동맹의 본질에 관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제재 완화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 및 종전선언 등을 북한이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를 언제까지 완성하겠다는 구체적인 시간표도 평양 공동선언엔 들어 있지 않다. 브루스 버닛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언제 실제로 폐쇄할 것인지, 언제 새로운 핵무기 생산을 중단하고 보유 핵무기를 축소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9일(현지시간) 성명에서 ‘2021년 1월’이라는 시점을 명시한 점에 비춰보면 미·북의 물밑 교섭에선 비핵화 시간표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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