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인지장애 단계에 치료하면
치매 진행 속도 늦출 수 있어
[ 이지현 기자 ] 고령 인구가 늘면서 걱정이 커지는 질환 중 하나가 치매다. 증상을 낫게 하는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데다 기억을 잃게 되는 증상 때문에 더 큰 두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불치병이라는 인식과 달리 약물이나 우울증 등으로 인한 치매는 치료할 수 있다. 경도인지장애 단계에 치료하면 치매가 빨리 진행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조기에 병원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는 2012년 29만6000명에서 지난해 49만1000명으로 매년 10.7%씩 늘었다. 치매 전 단계로 알려진 경도인지장애 환자도 2012년 6만3000명에서 지난해 18만6000명으로 매년 24.2%씩 증가했다. 지난해 치매 환자 중 남성은 14만1000명, 여성은 35만 명으로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2.5배 많았다. 김종헌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여성에게서 알츠하이머병이 더 흔하기 때문”이라며 “여성의 수명이 더 긴 것도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경도인지장애 질환을 치료하지 않으면 치매로의 전환이 빨라질 위험이 있다”며 “치매환자를 방치하면 진행이 빨라지고 자신을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삶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했다. 치매를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의미다.
많은 사람이 치매 치료를 포기하는 이유는 불치병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흔히 알고 있는 알츠하이머나 혈관성 치매는 아직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치매 환자들이 먹는 약은 완치보다는 증상을 완화하거나 진행을 늦추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치료할 수 있는 치매도 있다. 한호성 유성선병원 뇌졸중센터장은 “신경계 질환과 연관된 이차성 치매, 약물중독 및 대사성 질환에 의한 치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치매로 오인하는 가성 치매는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치매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신경 질환 중 하나는 뇌실에 물이 차는 정상압 수두증이다. 이 질환이 있으면 보행장애, 배뇨장애, 인지기능장애 등을 주로 호소한다. 뇌척수액을 일부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뇌수막종과 같이 서서히 자라는 양성종양도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 겉으로는 퇴행성 치매와 구분하기 어렵지만 자기공명영상(MRI) 등으로 진단할 수 있다. 수술 같은 치료를 통해 증상도 줄일 수 있다. 영양소 결핍으로 치매가 생기기도 한다. 비타민 B1이 부족하면 의식장애 등을 일으키는 베르니케 뇌병증이 생겨 치매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결핵, 기생충, 매독, 에이즈 등 감염성 질환이나 내분비 질환 같은 전신질환도 치매 증상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약물로 인한 인지기능 장애가 치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약물 대사와 분해 능력이 떨어지고 신장 기능이 약한 노인에게 주로 생긴다. 수면제, 안정제 및 항정신병약, 심혈관 치료제, 진통제 등을 과다 복용하면 시간, 장소, 환경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방향감각장애, 의식혼탁 등도 생길 위험이 있다.
약물로 인한 치매는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고 여러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사람에게 발생할 확률이 높다. 약물 복용 시 주의해야 한다.
우울증이나 조현병(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질환 때문에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을 치매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한 센터장은 “치매는 기억력을 포함한 주의력, 언어능력 등의 인지기능에 장애가 생겨 일상생활이나 사회활동에 문제가 발생하는 상태를 말한다”며 “질환이 의심되면 일찍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한다”고 했다. 환자의 과거 병력과 약물 복용력 등의 정보를 의료진에게 분명히 알리는 게 중요하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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