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어디에서 왔을까?
'커피 고향'은 에티오피아, 한때 '사탄 음료' 탄압받기도
377잔. 지난해 대한민국 성인 1인당 마신 커피의 양입니다. 세계커피기구 통계를 보면 더 놀랍습니다. 커피 소비량 세계 6위. 길에 수없이 보이는 카페, 편의점을 점령하고 있는 커피 음료. 그야말로 ‘커피공화국’입니다. 궁금증 하나. 커피는 언제부터 마셨던 걸까요.
지금은 커피 한 잔이 너무 흔하지만, 커피가 일상에 들어오기까지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6세기 초 메카에선 커피가 사람들의 분별력을 떨어뜨린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와인처럼 취하게 하는 음료라는 음해도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선 ‘사탄의 음료’로 불리며 탄압을 받았고요.
커피의 기원을 찾아보면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6세기께다, 800년께다 등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사실 아무도 정확한 기원은 모릅니다. 확실한 건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전해졌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거쳐 페르시아, 이집트,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게 정설입니다.
커피가 가장 널리 퍼진 시기는 15세기 메카에서였습니다. 종교적 목적이 컸습니다. 이슬람교 금욕파 수도사들이 야간 종교 의식을 위해 밤마다 커피를 마셨는데, 수도원장이 큰 토기 주전자에 담긴 커피를 잔에 따라 수도사들에게 나눠주고, 평신도에게도 돌렸습니다. 각성 효과에 위장을 깨끗하게 한다고 믿어서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즐기게 되면서 최초의 대중적인 ‘카베카네스(터키어로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 제일 처음 커피 맛에 눈뜬 사람은 누굴까요. 고종 황제였습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일하던 독일 국적의 프랑스인 손탁이 소개한 뒤 커피(당시 이름은 가배) 맛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고종 황제의 유명한 어록도 있지요. “나는 가배(커피)의 쓴맛이 좋다. 왕이 되고부터 무얼 먹어도 쓴맛이 났다. 한데 가배의 쓴맛은 오히려 달게 느껴지는구나.”
◆아메리카노의 유래
아메리카노, 미국서 애국자의 커피였다는데…
1987년 개봉한 영화 ‘바그다드 카페’. 미국 캘리포니아 황량한 사막의 낡은 카페를 배경으로 합니다. 미국을 여행하던 독일인 부부와 카페 주인인 브렌다 사이에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룹니다. 중요한 소품이 하나 있습니다. 독일인 부부가 갖고 있던 노란색 보온병. 진한 커피가 담겨 있습니다. 바그다드 카페의 커피 기계가 고장 나자 주인은 이 보온병 속 커피를 손님들에게 내어줍니다. 커피잔을 들이킨 한 미국인 손님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바닥에 내뱉어 버리죠. 독극물 아니냐면서. 그때 카페 주인이 다시 와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그제야 손님은 웃습니다. “이제야 맛이 괜찮네.”
흙탕물 같은 검은 액체에 물을 붓자 마법처럼 맛있어지는 그것. 바로 ‘아메리카노’입니다. 국내 스타벅스에서 음료 10잔을 팔면 6잔가량이 아메리카노라고 하니, 한국인들의 아메리카노 사랑은 유별납니다. 그런 아메리카노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유럽에서 커피 주문을 하면 당황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용감하게 “커피 주세요” 하면, 한참 뒤 지름이 엄지손가락만한 미니 커피잔이 나오죠. 이럴 땐 도저히 목에서 넘어가지 않아 ‘핫 워터’를 추가 주문해야 합니다. 지금은 어딜 가나 또박또박 ‘아·메·리·카·노’를 외칩니다.
아메리카노는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에 물을 더해 마시는 커피입니다. ‘아메리카노’의 어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 병사들의 일부는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도저히 못 마시겠다며 물을 타 마셨습니다. 유럽 병사들이 ‘양키들이나 먹는 구정물’이라는 조롱의 뜻으로 ‘아메리카노’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2차대전 훨씬 전부터 연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연한 커피를 마시게 된 건 18세기 ‘보스턴 차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커피보다 홍차를 즐겨 마셨습니다. 영국 정부는 동인도 회사에 차 무역 독점권을 부여했고, 이 회사를 거치지 않고 수입되는 차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했지요. 차가격이 뛰자 미국 상인들은 저항했고, 1773년 12월16일 보스턴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 선박을 습격해 수백 개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미국에선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는 게 애국 행위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커피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것이죠. 홍차와 가장 비슷하게, 연한 농도의 커피를 마셨답니다. 보스턴 차 사건이 없었다면, 스타벅스가 커피 전문점이 아니라 홍차 전문점이 돼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커피의 각성 효과
커피가 없었다면 바흐와 브람스도 없었다
“모닝커피가 없으면 나는 그저 말린 염소 고기에 불과하다.”
종교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남긴 말입니다. 그는 ‘커피의 아버지’라고도 불립니다. 작곡할 때 늘 커피가 옆에 있었고, 1732년엔 ‘커피 칸타타’로 알려진 칸타타 BMV211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커피를 끊지 않으면 약혼자와 결혼을 못하게 하겠다는 아버지의 최후통첩을 받은 딸이 혼인 서약서에 ‘커피 자유섭취 보장’이라는 조항을 끼워넣는다는 희극입니다.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도 새벽에 눈 뜨자마자 담배와 악보, 그리고 커피 기구를 찾았다고 합니다. 생에 단 한 번도 자신의 커피를 남의 손에 맡긴 적이 없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커피는 1600년 넘게 인류와 함께해온 각성제입니다. 커피의 각성 효과가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냈다는 주장도 있고, 수도원 신부님들의 밤샘 기도를 도와 종교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 커피의 각성 효과를 과감하게 빼버린 ‘디카페인 커피’가 요즘 화제입니다. 스타벅스가 국내 커피전문점 최초로 전국 매장에 디카페인 커피를 내놓으면서입니다. 유럽, 미국, 일본에선 이미 대중화됐는데 국내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에 맞추느라 조금 늦게 상륙했습니다.
사실 디카페인 커피의 역사도 꽤 오래됐습니다. 독일의 상인 루드빅 로젤리우스는 커피 시음가였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원인이 ‘카페인’이라 여기고, 1906년 카페인 제거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생두를 증기로 가열한 뒤 벤젠용액을 이용해 카페인을 빼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잠 깨려고 먹는데, 카페인 없는 커피를 누가 먹느냐’, 혹은 ‘임산부가 먹는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작 디카페인 커피에 환호하는 건 커피 사랑이 지나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던 ‘커피 중독자’들이라고 합니다.
카페인에 민감하다고 디카페인 커피를 5잔 이상 물처럼 마시는 건 위험합니다. 디카페인은 카페인이 아예 제거된 게 아니라 97% 이상 제거된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디카페인 커피 5잔은 일반 커피 1잔을 마신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원두 자체에 카페인 함량이 적은 품종도 있습니다. 예멘 모카마타리, 에티오피아 시다모 계열은 일반 아라비카 원두보다도 40~50% 정도 카페인 함량이 적다는군요.
◆ 블루마운틴의 진실
세계 3대 커피, 순위는 누가 매긴거죠?
몇 년 전 일입니다. ‘다방커피’를 사랑하는 한 선배가 원두커피 전문점에 가서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커피는 역시 블루마운틴이지!”
다들 5000원짜리 커피를 시킬 때, 혼자 1만2000원짜리 블루마운틴을 주문했습니다. 커피가 줄어드는 내내 블루마운틴의 뛰어난 맛과 위대함에 대해 들어야 했습니다. 몰래 한 모금 마셔봤는데, 제가 마시던 케냐AA보다 조금 더 부드럽다는 것 외에는 차이를 잘 모르겠더군요. 다방커피 마니아지만 블루마운틴만큼은 잘 알고 있다는 그 선배의 미스터리. 곧 알게 됐습니다. ‘세계 3대 커피’의 이름을 숙제하듯 외우고 있었더군요. 오늘은 세계 3대 커피의 진실을 다뤄보려 합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넘버원, 예멘 모카 마타리,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 우리가 흔히 듣는 ‘세계 3대 커피’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아무도 왜 이 원두들이 세계 3대가 됐는지 잘 모른다는 겁니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원두는 ‘예멘 모카 마타리’입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즐겨 먹은 원두로 유명하지요. 커피의 기원지인 에티오피아와 홍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예멘은 아라비카 커피를 세계에 알린 주역이었습니다. 상인들이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커피를 낙타 등에 싣고 모카항까지 이동해 유럽 등지로 커피를 수출했다고 하죠. 예멘과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된 최상급 아라비카를 여전히 ‘모카’라고 부른답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이렇게 유명하게 만든 건 뜻밖에 일본이었습니다. 영국 식민지였던 자메이카에 1728년 처음 커피가 전해졌고, 자메이카 커피는 1800년대에 유럽 전역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1900년대 대공황과 공급 과잉이 겹쳐 커피 농장들이 도산했습니다. 일본은 이 틈을 타 1960년대 자메이카 정부에 외환 지원을 하고 커피 농가 대부분을 인수했습니다. 일본은 이 중 최상급인 ‘넘버 원’ 원두 90% 이상을 자국으로 가져가고 나머지 10%를 글로벌 시장에 내놨습니다. ‘영국 여왕이 마신 커피’로도 포장했는데, 사실 당시 유럽에선 자메이카 원두는 여왕 아니라 여왕의 비서도 마셨더랬죠. 일본의 ‘작업’으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지금도 높은 가격에 거래됩니다.
하와이안 코나 커피는 작가 마크 트웨인 때문에 유명해졌습니다. 1800년대에 하와이 오아후섬에서 자란 커피 나무가 코나로 옮겨졌고, 이 커피를 맛본 트웨인이 극찬했습니다.
각각의 스토리는 있지만, 여전히 왜 세계 3대가 됐는지는 모릅니다. 전문가들은 “수백 종의 원두가 있는데 세계 3대 따위에 얽매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해의 작황, 원두 보관방법,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따라 커피 맛은 수천 가지 얼굴을 하기 때문입니다.
◆ 핸드드립 기구
핸드드립 기구는 왜 일본 브랜드가 많을까
“드롱기로 할까? 네스프레소가 더 낫지 않아?”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들이 하는 흔한 대화입니다. 커피가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커피 머신은 필수 혼수품이 된 지 꽤 됐죠.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치 장래 희망이 바리스타인 것처럼 에스프레소 기계 브랜드를 수없이 알아보고, 그라인더에 템퍼(에스프레소 가루를 눌러주는 기구)까지 기웃거렸습니다. 결국 해외 직구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올리브색 드롱기 에스프레소 머신을요.
엄청난 배송비에 웃돈까지 줘서일까. 바라만 봐도 뿌듯했습니다. 식탁 가운데 놓고 신줏단지 모시듯 매일 닦고 광을 냈죠. 처음엔 스팀기로 라테도 만들어보고, 에스프레소도 마음껏 내렸습니다. 계절이 몇 번 지나자 애정이 식더군요. 일단 청소가 귀찮았습니다. 유럽에서 먼 길을 달려온 그 아이는 이제 서랍장을 거쳐 창고 신세가 됐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건 깔때기 모양의 핸드드립 기구와 종이 필터. 이 단순하고 싸고, 작은 기구는 몇 년째 묵묵히 모닝커피를 내립니다. 여행길에도 가방 한구석을 차지하는 필수품이 됐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커피 핸드드립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핸드드립 기구의 3대 회사는 하리오, 칼리타, 고노입니다. 모두 일본 브랜드지요.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고 합니다. 핸드드립 방식은 1908년 독일의 주부 멜리타 벤츠가 양철컵의 바닥에 여러 구멍을 뚫은 뒤 종이를 그 구멍에 대고 커피를 추출한 게 최초라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 머신에 밀려 잊혀지고 있었죠. 엉뚱하게 이후 일본에서 꽃피우게 됐습니다. 다도(茶道)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선 커피도 차처럼 천천히 내려 깔끔하고 담백하게 마시는 방식이 인기를 끌었고, 핸드드립이 제격이었습니다. 기구 모양도 다르고, 필터도 종이 융 금속 등으로 다양하지요. 이들이 개발하고 발명한 기구들은 원두를 전 세계 집집마다 실어나르는 커피산업의 최고 발명품이 됐습니다.
핸드드립의 매력은 간편한 것 외에도 또 있습니다. 에스프레소는 기계에서 균질한 커피 원액이 나오지만, 핸드드립은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냅니다. 원두의 종류와 분쇄한 크기, 물의 온도와 커피 내리는 시간 등에 따라 개성이 드러나죠. 똑같은 커피 맛에 질린 사람들이 나만의 스페셜티 커피를 찾아 핸드드립 커피바를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창고 문을 열 때마다 쓸쓸하게 갇혀 있는 드롱기를 보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쯧쯧, 그거 얼마나 쓰는지 한번 보자”던 엄마의 얼굴. 네, 엄마는 늘 옳습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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