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총알 고속철' 타니 홍콩~선전 14분… 中 본토와 경제통합 빨라진다

입력 2018-09-26 18:45   수정 2018-12-25 00:00

광저우~홍콩 고속철 개통

中 주요 내륙도시와 쉽게 연결
광저우·선전·주하이 등 9곳 묶어
GRDP 1650兆 대형 경제권 탄생

홍콩선 '일국양제' 내세우며 반발

선전=노경목 특파원, 국제부



[ 노경목 기자 ]
옆에 앉은 중국인과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는 사이 열차는 홍콩 웨스트카오룽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중국 선전 중심가(푸톈역)에서 출발해 불과 14분이 걸렸다. 체감 시간으로는 더 짧게 느껴졌다.

지난 23일 중국 광저우와 홍콩을 잇는 고속철도가 개통됐다. 개통일에 탑승한 열차는 중추절 연휴에 맞춰 홍콩 여행을 가려는 중국인으로 가득 찼다. 선전 인근 공장에서 일한다는 뤼자오 씨는 “홍콩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고속열차 구경을 할 겸 타게 됐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간다는 우샤오멍 씨는 “50분 정도 걸리던 시간이 4분의 1 정도로 단축됐다”며 “20위안 정도 더 비싼 요금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광둥과 홍콩 경제권 통합 첫걸음

고속철도 개통으로 홍콩은 베이징 등 중국 내륙 주요 도시와도 쉽게 연결됐다. 여객기를 타기 위해 공항까지 가야 하는 불편이 사라졌다.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베이징에서 홍콩까지는 8시간56분, 상하이에서 홍콩은 8시간17분이 걸린다. 일반 열차나 자동차로 2시간이 걸리던 광저우에서의 접근 시간도 47분으로 단축됐다.

중국 정부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홍콩 관광만을 위해 고속철도를 건설한 것은 아니다. 올해부터 가시화하고 있는 광둥성과 홍콩·마카오 경제통합 계획 실현이 주된 목표다. 주장 하구에 있는 광저우와 선전, 주하이 등 중국 9개 도시와 홍콩·마카오 경제를 통합해 대규모 경제권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대상 지역의 인구는 6600만 명, 지역내총생산(GRDP)은 지난해 말 기준 10조위안(약 1650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1730조원, 인구 5163만 명인 한국과 비슷하다.

중국은 홍콩의 금융과 선전의 물류 및 창업 생태계, 광둥성 일대의 제조업 인프라를 결합해 세계적인 정보기술(IT)·금융 허브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해안 지역에 금융·산업 인프라가 결합된 미국 뉴욕 및 샌프란시스코, 일본 도쿄를 경쟁 상대로 삼았다. 관광·엔터테인먼트 관련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마카오까지 결합하면서 이 같은 목표가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관련 분야에서 한국과의 경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에 개통한 고속철도는 대상 지역의 물리적 이동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여기에 더해 중국 주하이와 홍콩, 마카오를 잇는 다리도 올해 말 완공한다. 6.7㎞의 해저구간을 포함해 전체 길이 55㎞의 세계 최장 규모로, 건설비 13조원을 투입했다. 리첸 홍콩 중원대 교수는 “단순한 경제 결합을 넘어 과학기술을 통해 해당 지역의 산업을 한층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라며 “중국 정부가 나서서 국제 과학기술 혁신지역 조성 등 다양한 기술 유치 및 규제 철폐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이질적인 문화 통합

고속철도를 타고 도착한 홍콩 웨스트카오룽역에서는 왼쪽 어깨에 오성홍기 견장을 단 중국 경찰과 세관원들이 승객을 맞았다. 홍콩과 선전의 접경지에서 하던 출입국 수속을 웨스트카오룽역 안에서 하게 돼서다. 고속철도 플랫폼에서 중국 출국 수속을 밟기까지의 과정도 이들이 감독했다. 홍콩 한가운데 중국의 행정·사법권이 직접 미치는 지역이 형성된 것이다. 중국은 홍콩 자치정부에서 임차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해당 지역을 관리하며 매달 임대료를 지급한다.

이와 관련한 홍콩 시민의 반발은 거세다. 2047년까지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한 ‘일국양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야당 의원들은 개통 전날까지 웨스트카오룽역 바깥에서 “중국 정부가 고속철도를 통해 홍콩의 중국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시위를 벌였다.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웨스트카오룽역 안의 중국 경찰들은 친절하게 행동했다. 표준 중국어인 보통어(베이징어)에 익숙하지 않은 홍콩인들을 배려해서인지 대부분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홍콩에서 오랜기간 활동한 한 금융인은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해상 물동량 규모가 선전에 뒤지는 등 홍콩인들이 느끼는 경제적·정치적 박탈감이 상당하다”며 “중국 정부의 경제권 통합 노력이 이 같은 지역 간 견제와 갈등을 넘기 힘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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