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투치 감독의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자코메티(제프리 러쉬 분)가 파리에서 미국 작가 제임스 로드(아미 해머)의 초상화를 18일 동안 그린 실화를 그렸다. 이는 자코메티의 마지막 화업이었다. 로드는 초상화 그리기가 2~3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지만, 자꾸 시간이 지연되면서 미국행 비행기를 거듭 연기하게 된다. “완성이란 없어. 그리려고 노력할 뿐”이라는 자코메티는 초상화를 그리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에게 예술이란 난해한 인간 본질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이다. 영화는 천재의 인간적인 면모도 묘사한다. 피카소에 대해 “남의 아이디어를 베끼는 도둑”이라고 폄하하고 샤갈이 그린 파리 오페라좌 천정화도 “그까짓 것”에 불과하다.
늙어가는 아내는 그에게 삶의 동반자일 뿐, 더이상 창작의 영감도 섹스 상대도 아니다. 젊은 창녀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자코메티와 아내는 서로 다른 이성과 바람을 피우는 것을 눈감아준다. 아내와 창녀뿐 아니라 자코메티와 로드의 스타일을 대비시킨 연출도 재치있다.
자코메티가 헝클어진 머리와 울퉁불퉁하게 주름진 얼굴의 소유자라면 로드는 조각 같은 얼굴과 세련된 패션의 주인공이다. 자코메티가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표현하는 ‘천재형’이라면 로드는 신중하게 화가의 작업을 관찰한 뒤《작업실의 자코메티》란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노력형’이다. 자코메티 역의 제프리 러쉬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여성팬들을 설레게 한 아미 해머의 호흡도 볼 만하다.
‘맥퀸’은 ‘패션의 조각가’로 불렸던 알렉산더 맥퀸의 성공과 좌절에 관한 일대기다. 양복점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디자인을 먼저 배운 여느 디자이너들과 달리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바탕으로 파격적인 패션을 창조한다. “패션쇼는 격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지론을 실천한 전위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
짐승 같은 모델을 등장시키는가 하면, 범죄현장에 있는 듯한 사람들의 스타일을 연출한다.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고, 로봇까지 등장시켜 미래와의 조우도 시도한다.
여성이 피해자임을 패션으로 고발한다. 그 자신이 어린시절 겪은 가정폭력에 대한 고해성사다. 여성성이란 아름답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여신 같은 전사’의 이미지를 연출해 강한 여성상을 부각시킨다. “지방시는 할머니들이나 입는 쓰레기”라고 욕한 그는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돼 개량형 패션을 선보이지만 혹평을 받는다.
부자가 될수록 불행해지는 모습도 빼놓지 않았다. 유명인사로 주목받는 스트레스, 마약으로 육신이 쇠락해진 그는 동성애로 에이즈까지 감염돼 추락하고 만다. 한창때 살집이 꽤 잡혔던 그가 병고로 바짝 말라가는 모습은 연민을 자아낸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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