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업무추진비 내역' 공개
주막·와인바 등 결제 3132만원
업종 누락 결제는 4억원 넘어
靑 "청와대는 24시간 일한다"
"긴급상황 등 심야 업무 불가피"
기재부는 '심 의원 고발' 맞대응
법정공방으로 비화되나
한국당 "국가안보·기밀 아니다"
정부 "정보 유출로 국가 안위 영향"
[ 박종필/안대규/박재원/성수영 기자 ]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27일 정부의 재정정보시스템에서 내려받은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자료를 전격 공개하면서 정부와 야당의 대립이 극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국정감사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심 의원을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초강수로 맞서며 정치권 공방도 뜨거워지고 있다. 심 의원은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의혹을 제기하고, 정부(기재부) 측은 “국가 안위와 관련된 자료를 가져갔다”며 심 의원에게 자료 반환을 요구하는 등 3자가 물고 물리는 난타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靑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했나
심 의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5월부터 올 8월까지 1년3개월 동안의 ‘청와대 업무추진비 내역’을 이날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가 업무추진비 사용이 제한되는 평일 오후 11시 이후 혹은 휴일에 사용한 업무추진비 카드 결제 건수는 2072건, 액수로는 2억4594만원에 달했다. 심 의원은 ‘정부 예산운용 집행지침’ 기준을 들어 “심야·휴일에는 원칙적으로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주막, 이자카야, 와인바, 포차 등의 상호명이 기재된 결제 건은 총 236건, 3132만원이었다. 가맹점명과 청구금액은 있지만 사용업종(지출목적)을 누락한 경우도 3033건(4억1469만원)에 달했다. 심 의원은 “저녁 기본 메뉴가 1인당 10만원 내외로 책정된 고급 음식점에서 사용한 건수도 70건에 달한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게 부적절하게 사용된 업무추진비”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다수 직원들이 업무 특성상 365일 24시간 긴박하게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통상 근무시간대를 벗어난 업무추진(비용 지출)이 불가피하다”며 심 의원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청와대는 “기재부 예산집행지침에 따라 (공휴일 등의 날짜에 지출할 경우) 사유서를 쓰고 증빙자료를 제출받아 규정을 지키고 있다”며 “국가 중요 행사가 저녁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호가 주점으로 사용된 사례는 일반식당 영업이 종료된 시간이어서 음식류를 판매하는 곳을 찾다 보니 부득이하게 사용한 것”이라며 “업종이 표기되지 않은 일부 지출은 (중소 상공인 카드수수료 부담이 신용카드보다 낮은) 직불카드를 사용하면서 생긴 오류”라고 반박했다. 한방병원이나 단란주점에서 사용한 결제 건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맞받아쳤다.
◆“국민 알권리” vs “국가 안위 영향”
심 의원이 내놓은 자료가 공개해도 되는 것인지도 논쟁거리다. 기재부는 이날 심 의원 자료 공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자료가 유출될 경우 국가 안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심 의원이 즉각 자료를 정부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심 의원을 검찰에 고발한 경위에 대해 “정보통신망에서 처리·보관되는 타인의 비밀 누설과 행정정보의 권한 없는 처리를 금지한 정보통신망법·전자정부법 위반”이라며 “불법적인 자료의 외부 유출과 공개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자료에는) 통일 외교 치안 국가안보전략 보안장비 등 국가 주요 인프라와 국가시스템, 고위직 인사의 일정과 동선, 각종 심사 평가위원 관련 정보 등이 망라돼 있다”며 “(자료에 포함된) 시설관리 등 거래업체 정보가 노출되면 경호·신변안전에 위해(危害)가 가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국가정보원, 주요 군사시설 등에서 거래하는 민간업체 정보가 노출되는 것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심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이 자료는 국민 세금인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라고 맞섰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입법부가 국가 공무원이 쓴 신용카드를 보지 못할 이유가 있느냐”고 거들었다.
◆법적 공방으로 번진 야당과 정부의 대립
양측 공방이 법적 다툼으로 불붙으면서 심 의원이 적법하게 자료를 취득했는지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심 의원은 “기재부에서 정상적으로 발급받은 권한(ID)으로 접근해서 우연히 찾은 정보”라며 전산정보 관리를 허술하게 한 정부에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기재부는 “심 의원 보좌진이 정상적인 방식에 따라 로그인(접속)한 것은 맞지만 이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비인가 영역에 접근해 자료를 불법 취득했다”며 “우연히 습득했다면 접근을 중지하고 한국재정정보원에 즉각 알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A법무법인(로펌)의 한 변호사는 “심 의원 측이 자료 공개를 하기 전 기재부와 사전 협의했어야 한다”며 “보안 장벽이 무너졌다고 불법 취득이 아니라는 식의 주장은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B로펌 변호사는 “기재부의 허술한 보안에 대한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며 “민사소송으로 가면 보안담당자 책임을 인정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검찰도 공방에 휘말리게 됐다. 정부가 심 의원 보좌관을 1차 고발한 지 3일 만인 지난 21일 심 의원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수사 속도나 방식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당은 검찰이 심 의원 수사는 신속하게 하는 반면, 정부·여당에 대한 고발은 수사조차 하지 않는 등 편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검찰은 심 의원 측이 기재부를 맞고소한 사건과 한국당이 정부의 신규 주택 공급 후보지를 누설한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고발한 사건을 각각 서울중앙지검과 남부지검에 배당했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증거가 되는 로그 기록부터 빨리 확보해야 하는 정보유출 사고는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명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어떤 개인의 조직적 범죄행위라기보다 국회의원의 법적인 권한과 관련한 문제”라며 “그 누구도 실형을 (선고)받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박종필/안대규/박재원/성수영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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