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주지훈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영화 최초로 시리즈 모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쌍천만'이란 대기록을 달성한 '신과 함께' 시리즈, 그리고 '공작'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력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 '암수살인'은 주지훈이 올해 내놓는 마지막 작품이다. 앞으로 넷플릭스 '킹덤', MBC '아이템' 등 드라마 스케줄이 줄줄이 잡혀있여 당분간 스크린에서 주지훈을 볼 수 없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암수살인'은 사건 접수조차 되지 않은 숨겨진 살인 사건을 뜻한다. 2012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감옥에서 온 퍼즐'을 모티브로 감옥에 수감된 살인범이 "제가 죽인 사람은 총 7명"이라고 한 형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주지훈이 연기하는 강태오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로도 판독이 불가한 희대의 살인마다. 계획적으로도 살해하고, 기분이 나빠도 살해하고, 그냥 죽이고 싶을 때 살해하는 역대급 악당이다.
주지훈은 실제 살인범과 직접 마주한 적도 없지만, 말투와 발걸음까지 재연해 내며 물오른 연기력을 보여줬다. 껄렁이다가도 한순간 변해 눈을 번뜩이는 주지훈의 연기에 극의 감수를 맡았던 실제 사건 담당 형사도 "똑같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이 모든 것은 주지훈의 연구로 완성됐다. "광기 어린 연기가 인상깊었다"는 평에 주지훈은 "참고한 연기자는 없었다"면서 고민의 시간을 전했다. '암수살인'에서는 범죄 수사 장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추격 장면이 빠졌다. 오로지 강태오의 증언과 김형민의 수사가 영화의 긴장감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어떻게 하면 상업영화로서 쾌감을 끌고 갈 수 있을까?"가 고민의 포인트였다.
"이게 표현만 된다면 큰 강점이 될 것 같았어요. 심리적인 긴장감으로 스릴러를 이끌어가는 거잖아요. 극 중 접견실 장면이 계속 겹치는데요. 같은 공간인데 다른 분위기를 주고 밀당하는 걸 느끼게 해야 하니 죽겠더라고요."
주지훈은 "촬영 내내 죽을 것 같았다"면서 "고개를 돌리고, 손을 올리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계산해서 촬영했다"고도 털어놓았다. 몸을 돌리는 각도까지 약속된 동선대로 촬영했다는 것. 그렇지만 그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사투리였다.
"경상도 사투리란 장애물이 굉장히 높았어요. 생각해보니 하루에 사투리만 8시간~9시간 공부하며 연기했던 것 같아요. 촬영 전후로 각각 2시간씩 연습하고요. 촬영장에서 저만 서울 사람이고 감독님, 김윤석 선배, 제작자인 곽경택 감독님까지 모두 부산 사람들이라 '틀리면 어떡하나' 부담도 컸죠."
긴 다리로 높이가 맞지 않는 접견실 의자에 앉아 몇시간 씩 촬영하면서 약속된 동작들과 낯선 사투리를 해야했다. 결국 극도의 긴장감과 부담감으로 위경련이 와 응급실 신세를 졌을 정도다. 그랬던 주지훈이 그 중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꼽는 게 접견실에서 강태오의 증언을 캠코더로 촬영하는 부분이었다.
"전 리허설 때 다 던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감독님은 사투리도 써야하고, 동작도 크고 하니까 리허설때 다 보여주길 바라셨나 봐요. 영상에 담으면 실제로 나오는 에너지보다 반감되는데, 그걸 또 캠코더로 찍어야 하니까 100을 보여줘야 한다면, 전 150, 180을 해야 했거든요. 이걸 리허설을 1시간을 하니까, 전 감정을 아끼고 있는데 자꾸 '올려야 한다'고 하셔서 나중엔 제 눈가가 떨렸어요. 그걸 보고 김윤석 선배가 '그만하소, 힘들다' 하고 도와주셨죠.(웃음) 그래도 화내진 않았습니다."
설정부터 쉽지 않았고, 이미 많은 작품의 촬영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막장 살인극인줄 알았다"는 '암수살인'을 택한 건 선배 배우 김윤석 때문이었다. 주지훈은 "비빌 언덕이 생겼다 싶었다"면서 김윤석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제가 언제 김윤석 선배를 갖고 놀겠냐"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제가 흔들릴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단단하게 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게 안심이 됐어요. 연기를 하면서도 강태오가 진짜 미친놈 같을 때가 있었어요. 큰 그림을 그려놓고 자잘하고 세밀하게 계획을 짜는 모습을 볼 때 연기하는 저도 헷갈렸거든요."
'암수살인' 촬영으로 짧게 깎은 머리카락이 자랄 때까지 영화 '신과 함께' 무대 인사, 인터뷰 모두 가발을 쓰고 카메라 앞에 섰다. 선배 배우 하정우가 "꼭 안그래도 돼"라고 조언하기도 했지만, 주지훈은 "'암수살인'에서 '짠'하고 보여드리고 싶어서 수많은 유혹을 참고 견뎠다"고 말했다.
죽도록 노력하고, 대중들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주지훈이다. 최근 물오른 연기력과 함께 '다작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작품에 대한 갈증을 숨기지 않았다. 8년을 탔어도 차 주행거리가 2만km밖에 안 될 만큼 열심히 걸으며 건강 관리를 하는 것도 많은 "작품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얼마 전에 '킹덤' 촬영이 끝나서 3~4개월 정도 촬영하는 작품이 없었어요. 중간중간 영화 홍보 프로모션 스케줄로 쉬는 날은 없었지만, 촬영스케줄이 이렇게 없었던 건 3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아요. 배우는 좋은 대본이 들어와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악마의 유혹처럼 좋은 작품을 보면 안 할 수가 없어요. 아직 젊으니까, 지금까진 괜찮은 것 같아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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