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아예 국정 아닌 '기업 갖고놀기 감사'
'한국만 경제활력 추락'은 안중에 없나
올해도 어김없이 국정감사 시즌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이벤트가 시작됐다. 다름 아닌 ‘기업인 증인 호출’ 소란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이 국감 증인으로 신청했다는 기업인 명단을 흘리면서 기업들 애간장을 태우는 ‘기업 농락’ 신종 수법까지 등장했다. (한경 9월29일자 A1, 4면 참조)
기업인들을 불러 망신을 주거나 골탕을 먹이는 행렬에는 보수와 진보, 여야를 가릴 게 없다. ‘친(親)기업’을 자임하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 평양에 다녀온 대기업 총수들을 증인으로 호출하겠다고 나섰다. “남북한 경제협력, 산림협력과 관련해 북한 측과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따져 묻겠다”는 사유가 어이없다. 대한민국 국회 수준이 이 모양이다.
국회만이 아니다. 이 나라를 이끌고 가는 입법-사법-행정 3부 종사자들의 기업과 기업인을 보는 시선이 걱정스러울 정도다. 검찰은 노사관리, 투자결정 등 경영행위에 “걸리기만 해보라”는 살벌함이 느껴지는 먼지털기식 수사로 기업인들을 질식시킨다는 소리를 들은 지 오래다.
사법부도 배임죄 등 ‘걸면 걸리는’ 법 조항을 기업인 단죄에 남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목소리가 한층 커진 좌파 시민단체들의 낡디 낡은 ‘재벌적폐 청산’ 레퍼토리를 앞세운 반(反)기업 정서 부채질도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업인들이 삼중사중 족쇄를 찬 상황에서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경제 덩치가 한국의 12배인 미국은 중앙은행(Fed)이 엊그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3.1%로 상향 조정한 반면, 이 나라는 간판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2%대 추락을 내다볼 정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제대로 된 일자리가 자취를 감춰 청년은 물론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일자리 전쟁’에 내몰리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성장과 일자리 원천인 기업 활동을 북돋우는 대신 친노조-반기업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나라를 1인당 소득 3만달러 문턱으로 끌어올린 기업들은 ‘투명인간’이란 말인가.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상징하며 도약에 앞장서 온 기업과 기업인들이 이렇게 ‘동네북’에 조롱거리로 업신여김받는 나라를 정상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인을 신분질서의 맨 밑바닥에 깔아뭉개며 천대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조선시대가 어떤 결말을 자초했는지는 되새기는 것조차 끔찍하다. 개성상인의 상징이었던 거상 임상옥과 제주 물류를 일으키며 빈민구휼에 큰 공을 세운 김만덕이 만년에 기업가의 삶을 버리고 양반계급의 끄트머리를 돈으로 사며 곱씹었던 비운을 21세기 후예들이 대물림해야 한다는 건 참으로 황당하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기업인이 제자리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돌려놓는 일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 소위 ‘선비’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대오각성이 시급하다. 국회가 참회와 개전(改悛)의 첫걸음을 뗄 것을 권고한다. 누가 봐도 기업인 괴롭히기와 조롱, 능욕의 경연장으로 타락한 국정감사를 대수술하는 것으로 첫걸음을 떼기 바란다.
차제에 한국에만 있다는 정기 국정감사제도를 폐지하고, 상시 국회 개설 등 주요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는 시스템을 지금이라도 도입할 것을 주문한다. 정치-행정-사법적으로 아무런 힘도 없는 기업과 기업인들을 쥐고 흔들며 기업할 마음을 빼앗는 능욕질이야말로 이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적폐청산’ 대상으로 맨 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지금 같은 식이어서는 간판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 망명’이 현실로 벌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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