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원순 기자 ] 일본 영화 ‘라쇼몽’은 진실과 사실 규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스타로 만든 이 작품 자체가 원작 소설의 이름만 빌렸을 뿐 내용은 다른 소설을 극화해 뒷말을 남겼다. ‘무엇이 진실인가’를 화두로 삼은 작품조차 그런 점에서 시빗거리를 남긴 셈이다. ‘눈은 가장 나쁜 증인’이라는 서양 격언을 보면 진실과 사실 좇기는 늘 힘든 과제다. 직접 봤다는 것조차 착시였거나 헛것일 수 있다. 인간 인지능력의 한계다.
진실 규명은 문명사회 성원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다. 이를 기치 삼아 일상의 업으로 삼는 직업 중 하나가 언론이다. ‘팩트는 신성하다’는 말이 법정만큼이나 자주 나오는 곳도 언론계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전달과 기록에 그치는 언론도 드물다. 지향점이 불분명하고 ‘가치 판단’도 없는 보도물에 독자가 관심을 가질까. 취사선택에서부터 관점이 반영되는 게 기사다.
독자들의 매체 선택폭이 커질수록 ‘뉴스원(源)’들은 불편해지고, 때로는 괴로워진다. “언론과 국회만 없으면 공무원 해볼 만한데….” 일선 기자로 정부 부처를 드나들 때 종종 들은 말이다. 가령 ‘수도권 광역교통망 완공 목표시점 대비 50% 진행’이라는 정책 보도자료를 내면 ‘늑장행정, 3년 뒤 교통대란 우려’로 쓰는 게 언론이다. 1년 뒤 ‘80% 진도, 목표보다 6개월 앞당겨 준공’이라고 발표하면 ‘또 부실공사 예고’라고 제목을 다는 매체도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기사를 흔들며 ‘국회’는 공무원들을 몰아세우기 일쑤다.
그러면 언론매체는 대단한 갑(甲)인가. 손해배상 피소는 고사하고 언론중재위원회라도 몇 번 불려 다녀보면 기사쓰기가 겁날 수밖에 없다. 정부 발표조차 확인은 기자 몫이라는 중재 결정도 적지 않다. 터무니없는 제소로 중재위 재판정에서 전속 변호사·노무사까지 대동한 이익단체들과 홀로 입씨름이라도 벌이다보면 진이 다 빠진다. 전의(戰意) 상실, 때로는 제소자 측이 노리는 바도 이것이다. 앞으로 재갈을 물리자는 속셈이다.
특종을 좇는 게 언론 숙명이지만 특종과 오보가 간발의 차이일 때도 많다. 악의적인 가짜뉴스도 있겠지만, 과잉경쟁에 특종의욕으로 검증을 놓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멋진 ‘사업’구상이 여건미비에 상황급변으로 ‘사기’가 돼버리는 식이랄까.
정부가 사실상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낙연 총리의 격한 발언을 보면 검경이 ‘칼’을 뽑을 것 같다. 현행 법규로도 악의적인 오보는 대응할 수 있다. 공보관 대변인이 즐비한 정부 쪽은 해명과 변명의 상시 통로도 갖고 있다. 보도 매체의 뉴스와 개인들 주장이 SNS에 뒤섞여 다니는 시대다. 인터넷 1인 방송 규제안과 겹치면 나라 밖에서는 어떻게 볼까. ‘천부의 언론 자유’를 생각해봐도 자율규제나 자정 호소가 먼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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