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입력 2018-10-07 17:52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석유왕’ 록펠러의 건강 비결 중 하나는 ‘꿀잠’이었다. 그는 자는 동안 모든 것을 잊고 숙면을 취했다. 사무실에서도 매일 한 시간씩 낮잠을 즐겼다. 그 덕분에 98세까지 장수했다. 잠이 최고의 보약이었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하루 평균 10시간이나 잤다. “잠은 인생의 사치”라고 했던 에디슨조차 틈만 나면 간이침대로 가 눈을 붙였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있지만 ‘위인’ 중에 이런 잠꾸러기가 많았다. 처칠과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낮잠으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잠을 잘 자고 나면 다섯 가지가 즐겁다고 한다. 이른바 ‘숙면 5락(樂)’이다. 정신이 맑아지고, 창의력이 향상되며,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활력까지 얻게 된다.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갈수록 줄고 있다. 지난해 조사 결과 하루 평균 6시간24분으로 5년 전(6시간53분)보다 29분이나 짧아졌다. 전문가들은 ‘잠 못 드는 한국’의 ‘숙면 5적(敵)’으로 과도한 스트레스, 긴 노동·학습시간, 늦게까지 활동하는 사회적 환경,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을 든다. 이렇게 수면 부족에 오래 시달리다 보면 돈을 들여서라도 ‘꿀잠’을 찾게 된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잠 부족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각광받고 있다. 1990년대에 나온 이 용어는 잠(sleep)과 경제학(economics)을 합친 것으로 수면산업 전체를 의미한다. 지금은 숙면용 기능성 침구와 매트리스를 넘어 첨단 기술을 활용한 수면보조 의료기기 등으로 산업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2010년대 도입돼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CT)과 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한 슬립 테크(sleep tech) 제품이 등장했다. 간단한 음성인식으로 침대를 체형에 맞게 조절하는 ‘스마트 모션베드’, 일상 소음을 줄이고 빗소리와 낙엽 소리 등 자연음향으로 숙면을 유도하는 ‘노이즈-마스킹 슬립버드’ 등이 인기다.

도심에서는 직장인들이 찾는 ‘낮잠 카페’가 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수면실을 따로 설치해 직원들의 숙면을 돕는다. 나이키처럼 ‘콰이어트 룸(수면실)’을 마련하거나 구글처럼 일과 중 낮잠 시간을 따로 정해놓는 곳도 많아졌다.

국내 슬리포노믹스 시장 규모는 아직 2조원 안팎이다. 미국(약 45조원)과 일본(약 9조원)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 침구뿐만 아니라 첨단 가구·바이오 분야와 연계한 미래산업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굳이 돈을 주고 사는 잠이 아니더라도 숙면은 우리를 고요와 평온의 세계로 인도한다. 건강하고 달콤한 잠은 ‘사랑의 묘약’과도 같다. 아주 달게 곤히 잠든 연인의 표정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으랴.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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