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태 기자 ] 모두가 지금 우리 경제를 위기 상황으로 규정했다. 과거와는 다른 ‘구조적 위기’라는 판단도 비슷했다. “장기 침체로 이미 접어들었다”(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단기적인 대응책으로는 어떤 것도 방향을 틀기엔 역부족이다”(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암울한 진단이 넘쳤다. 결론은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데 모아졌다. 한국경제신문이 창간 54주년을 맞아 국내 경제 원로와 전문가들을 연쇄 인터뷰한 결과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보완하기 위해 혁신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방향은 맞게 잡았다”는 게 원로 및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구호만 넘칠 뿐 구체적인 전략을 찾을 수 없다” “실천 의지가 안 보인다”는 우려가 많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략 다섯 가지로 모아졌다. 첫째, ‘시장이 마음껏 뛰도록 정부 간섭을 줄여라’. 정부가 플레이어로 나서는 한 혁신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혁신성장은 기업의 창의와 혁신에 의해 이뤄지는 것인데 관리감독과 규제에 익숙한 나라와 조직은 창의적일 수 없기 때문”(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역할은 “마중물을 만들어 기업이 도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는 조언이 이어졌다.
둘째, ‘혁신성장의 요체는 규제 혁파다’. 혁신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은 규제이며, 최대 적은 기득권 저항세력이라고 이들은 잘라 말했다. “저항세력과의 싸움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각오로 적폐청산하듯 밀어붙여야 한다”(윤 전 장관), “‘선(先) 시행-후(後) 규제’로 모든 규제를 풀면서 우리보다 더 시장친화적으로 변신한 중국에 이미 뒤지고 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고언이 잇따랐다.
셋째, ‘혁신을 저하시키는 실패 징벌을 없애자’. 공무원의 정책 혁신 의지를 꺾는 감사원의 정책감사, 혁신적·선도형 연구보다는 안전지향·추격형 연구에만 집착하게 하는 연구개발(R&D) 평가제도, 단 한 번 실패해도 ‘주홍글씨’라는 낙인을 찍어 재도전을 불허하는 문화를 바꾸지 않고는 혁신성장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를 키워야 창업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다”(이민화 KAIST 교수·전 벤처기업협회 회장)는 것이다.
넷째, ‘수도권 vs 지방의 해묵은 논리에서 벗어나자’. 세계는 메가도시끼리 경쟁하며 규제 장벽을 허물고 혁신성장에 앞서가는데, 한국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양극단의 선택지로 내몰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는 걸 이들은 우려했다.
다섯째, ‘개방이 정답이다’. 저출산·고령화 벽에 갇힌 한국 경제가 혁신성장으로 재도약하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 고급인력, 기술과 자본을 가진 외국기업이 마음껏 국내로 뛰어들도록 모든 빗장을 풀자는 것이다. 입출국이 자유로운 나라, 이주와 정주가 편한 나라, 기업의 설립과 운영이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한국을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충만했던 나라”라고 칭송했다. 1960~1980년대 중반까지의 얘기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우리 기업에는 그때의 역동성과 활력은 찾아볼 수 없고 기업가정신도 거의 사라져버렸다는 얘기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술 혁신에 의해 사업구조, 상품, 생산방식, 마케팅 등 경영전반을 혁신해 성장하는 것이 혁신성장”이라며 “이를 주도하는 기업가정신을 부활시키는 것이 혁신성장의 요체”라고 강조했다.
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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