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이 성장 촉진 '내생적 성장이론' 명성
기술훈련 투자로 생산성 높여야
법으로 소득 늘리기, 좋은 방법 아냐
신기술 습득해야 장기성장 가능
도시 인프라 투자에 미래 달려
사람들이 쉽게 모이고 연결돼야
지식·기술 축적 쉽고 일자리 많아
집값 안정이 관건…공급 늘려야
잘나가는 美경제 위험 대비해야
시기·규모 모르지만 금융위기 올 것
[ 뉴욕=김현석 기자 ]
2018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62)는 한국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늘어난 소득이 기술 습득으로 이어지는 게 정책 성공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인위적 정책으로 늘어난 소득이 소비로 이어지면 저절로 성장하는 게 아니라, 늘어난 소득이 교육(기술 훈련)에 투자돼 생산성을 높이는 데 쓰여야 장기 성장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로머 교수는 기술과 혁신이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의 대가다.
로머 교수는 8일(현지시간) 뉴욕대에서 기자회견 직후 기자와 만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부유해지기 위해선 똑똑해져야 한다”며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고선 소득이 계속 오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장기적인 성장엔 기술 습득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로머 교수는 “법으로 소득을 높여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다”며 “누구든 성장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변화를 원하지는 않는다. 변화를 불러오는 한 가지 방법은 배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도시화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도시에선 쉽게 학교에 갈 수 있고 취업해 새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머 교수는 도시 인프라 투자에 성장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보고 최근 도시화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고 쉽게 연결되는 도시에서는 지식과 기술이 빠르게 축적되고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그는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유일한 방법도 도시화라고 강조했다.
로머 교수는 ‘지나친 도시화는 집값을 올리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택 수요가 늘어나는데도 공급이 증가하지 않으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지만 그냥 시장에 맡기면 시장은 수요공급원칙에 따라 스스로 공급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만 않아도 시장논리에 의해 충분한 공급이 이뤄져 가격 조절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는 미국의 고립주의,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대해서는 사람들 간 연결(connection)을 막는다는 측면에서 강하게 비판했다. 로머 교수는 “더 많은 사람이 연결되면 더 빨리 발전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며 “이것이 세계화가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화는 단순히 물건을 교역하는 것과 다르며 아이디어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로머 교수는 9년 넘게 호황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 경제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미국 경제엔) 당연히 위험이 있고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지만 또 다른 금융위기가 생길 것도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건 과거 위기에서 배운 교훈을 얼마나 잘 활용해 대비 계획을 세워놓는지 여부”라며 “경제 안정성뿐 아니라 불평등을 포함한 정치적 안정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로머 교수는 이민(난민) 문제를 도시화 측면에서 평가했다. 적정한 이민은 도시 발전을 촉진하지만 대량 난민은 도시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북한발(發) 대량 난민 발생 가능성에 대해 한국이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북한에서 주민들이 한꺼번에 넘어온다면 한국 사회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을 때 중국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로머 교수는 일본 등 선진국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금리 등 통화정책으로 (단기적으로) 성장을 높이는 정책을 취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기술 수준을 높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키우고,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후 변화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탈(脫)탄소화가 돈이 많이 들고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포기하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진보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로머 교수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올바른 인센티브를 마련해 시장이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것”이라며 “각국 정부가 탈탄소화가 일어날 수 있게 인센티브와 프레임워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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