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훈 기자 ]
세월의 때가 묻은 나무 창틀과 누르스름한 회벽, 목재 기둥이 교차해 벽면을 이뤘다. 열려 있는 짙은 색의 문으로 온화한 빛이 들어와 실내를 비추고 있다. 낡은 주택의 한 부분을 찍은 사진인데, 어린 시절 우리가 살았던 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진은 사진가 박기호 씨의 ‘돈의문, 2013’이란 작품으로, 서울 돈의문, 미아동, 북아현동, 길음동 등 재개발을 위한 철거 현장에서 찍은 ‘고요한 경계’ 시리즈의 하나다.
보통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철거가 진행 중인 오래된 주택가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찾으려 한다. 그런데 박씨는 거주민들이 오랜 세월 살며 남겨 놓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좇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아 나갔다. 그래서 그의 사진엔 한때 꽃피었던 서민들의 기쁨과 슬픔이 잔잔히 녹아들어 있다. 또한 예술적 형식미를 갖추고 있어 보는 즐거움을 준다. (한미사진미술관, 20일까지)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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