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로 정권도 바꿨다"…학습효과로 얻은 '시위 만능주의'

입력 2018-10-12 17:52  

경찰팀 리포트

최근엔 정치·노동 이슈 아닌
난민법·불법 촬영 수사 관련 등
인터넷상 여론전도 광장에 나와

정부 정책·판결에 대한 불신
시민들 거리 나오게 만든 요인

"주인의식 커져 정치문화 형성"
vs
"소음 공해·교통 체증만 심해져"



[ 조아란 기자 ]
올초부터 지난달까지 전국 곳곳에서 하루 평균 175건의 집회가 열렸다. 주말이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하루에만 2~3건의 집회가 열린다. 작년 6월부터 24시간 개방된 청와대 앞길에서도 시위대 행렬을 볼 수 있다. 도심에서는 더우나 추우나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목격된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에도 하루 평균 213건의 집회가 열렸다. 서울과 수도권에 호우경보가 발동된 8월29일엔 광화문 일대에 소상공인 3만 명이 우비를 쓰고 나와 집회를 벌였다. 대한민국은 왜 ‘집회 공화국’이 됐을까. 전문가들은 ‘정권을 바꾼’ 2016년 촛불집회가 계기가 됐다고 분석한다.

인터넷 여론전이 그대로 광장에

최근에는 인터넷 여론전이 실제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대로 집회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포털 다음 카페 ‘불편한 용기’가 주도하는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 시위’는 지난 6일 서울 혜화역에서 다섯 번째 집회를 열었다. 이 단체는 5월 1차 집회를 시작으로 경찰이 여성에 대한 편파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사법부도 비판한다. ‘홍대 남성 누드모델 몰카 사건’에서 가해 여성이 실형을 선고받는 반면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는 등 ‘남성을 우대하는 판결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오는 27일부터는 남성들까지 거리에 나온다. 네이버 카페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는 27일 혜화역 일대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경찰서에 신고했다.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남편이 강제추행 혐의로 억울하게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며 아내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네티즌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건이다. 당당위 측은 “사법부가 무죄추정 원칙과 증거재판주의를 어기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의 진술에만 의존해 남성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뉴스 댓글창에서 보던 ‘여혐(여성혐오)’ ‘남혐(남성혐오)’ 논쟁이 광장으로 번진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이 생긴 이래 최다 추천 수(71만4875개)를 받았던 난민법 폐지 및 개정에 관한 문제도 도심으로 나왔다. 지난달 16일 난민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찬반 단체가 맞붙었다. 난민인권센터 등 난민 수용을 주장하는 단체 회원 500명은 이날 오후 2시 종각역 4번 출구 보신각 앞에서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를 열었다. 같은 시간 8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종로타워 앞에서는 난민 반대 단체 ‘난민대책 국민행동’ 회원 100명이 ‘제6차 난민 반대 집회’를 열었다.

“집회로 정권 바꿨다는 학습효과 영향”

정치투쟁과 노동운동이 주를 이뤘던 광장 집회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생활 이슈가 쏟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2016년 촛불집회가 계기가 됐다고 분석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회를 통해 정권을 바꾸는 경험을 하면서 집회를 조직하거나 집회에 참여해 주목을 받으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여론전이 난립하고 있는 것도 이들이 광장 집회에 나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반 시민과 청와대의 소통창구로 작년 8월 운영되기 시작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30만9000여 개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421일간 하루 평균 734개의 청원글이 올라온 셈이다. 지금까지 여성 집회에 대부분 참석했다는 직장인 한모씨(31)는 “포털에 올라온 뉴스 링크를 인터넷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올리기도 했지만 항상 다른 이슈에 묻히곤 했다”며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집회에 갔다”고 말했다.

경찰이 집회 시위에 대해 대응기조를 바꾼 것도 배경이 됐다. 문재인 정부 집권 1년차인 지난해 집회 시위로 처벌받은 인원은 총 1440명(구속 17명, 불구속 1423명)으로 전년 대비 58% 줄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집회 시위로 처벌받은 인원은 줄곧 3000명대였지만 지난해 급격히 감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라는 경찰개혁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여 집회 시위 현장 채증도 제한적으로 하고 있다”며 “채증조 자체를 편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편성해도 현장 상황에 문제가 없으면 투입하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과거 집회 시위가 제한됐던 국회 앞과 청와대 앞에서도 집회 시위를 허용하고 있다.

“정치 효능감 높아져” vs “교통 지옥”

늘어난 집회 시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내 손으로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정치 효능감이 높아졌다는 면에서는 집회 시위 증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구 교수는 “정치 효능감이 높아지면 시민의식이 올라가고 주인의식이 커져 건전한 정치문화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도 많다. 청와대 인근인 서울 청운효자동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43)는 “평일 반차를 내고 집에서 쉬는데 시위 행렬이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집 안까지 들려서 고역이었다”며 “주말에 동네 산책을 하면 대한민국 온갖 단체의 요구를 모두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운효자동 주민들은 지난달 17일 “집회 소음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며 청와대 국회 경찰청 등에 탄원서를 냈다. 차량 통행이 많은 도심 한복판에서 연일 집회가 열리면서 교통 체증이 심해지는 일도 다반사다. 지난달 12일에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 7000여 명이 서울 세종대로 5개 차로 중 3개를 점거하고 오후 5시까지 시위를 벌여 한때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y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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