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갑 기자 ] 19세기 영국에서 활동한 미술가 조지 프레더릭 와츠(1817~1904)는 보헤미안적 삶을 추구한 당대 화단의 이단아였다. 다윈의 진화론에 큰 감화를 받은 그는 산업사회에서 불완전한 지식을 가진 권위주의자들의 고정관념을 자유주의적 관점을 담은 시각예술로 타파하려 했다. 그것은 때론 보편적인 가치의 상징으로, 때론 사회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났다.
의붓딸이 죽은 뒤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작업한 ‘희망’은 바로 그런 관점을 응축한 대표적 작품이다. 천으로 눈을 가린 한 여인이 겨우 몸을 추스르듯 구체 위에 맨발로 앉아 있는 모습을 섬세하게 잡아냈다. 조심스럽게 드러나 있는 왼발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오른쪽 종아리를 감아올린다. 보듬고 있는 리라는 사슬에 묶여 있고, 소리를 낼 수 있는 현은 단 하나밖에 없다. 여인은 오른손으로 달래듯 현을 뜯으며 그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마치 절망을 묘사한 듯 음울하고 처절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희망을 떠올릴까.
당시 미술 비평가들조차 작품 제목에 의문을 제기한 건 당연했다. 그러나 와츠는 “단 하나의 코드로라도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라고 반박했다. 가슴이 저려오는 슬픔의 한 자락이 찬란한 희망으로 다가온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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