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 日, 구인난 못견뎌 흑자도산 vs 불황 韓, 일감절벽 내몰려 줄도산

입력 2018-10-15 17:48   수정 2018-11-14 00:30

고민 다른 韓·日 기업


[ 도쿄=김동욱/김순신/황정환 기자 ]
일본

아베노믹스로 경기회복
기업들 인력확보 각축전
인건비 올려주다 폐업도

고령자·외국인 고용확대
경쟁업체간 공동영업 등
발 빠르게 자구책 추진

“획기적인 신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보다 일손 부족에 대처하는 게 급선무다.”(다카오카 고조 네슬레일본법인 사장)

일손 부족 탓에 문을 닫는 일본 기업이 늘고 있다고 산케이신문이 15일 보도했다. 2012년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본격화된 뒤 경기 개선으로 일감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적지 않은 중소 규모 기업들이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곤경에 처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일손 부족 탓에 흑자도산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고령 근로자 및 외국인 고용 확대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풍년 아사(豊年餓死)’하는 日 기업

산케이신문은 시장조사업체인 도쿄상공리서치 발표 자료를 인용해 일손 부족으로 도산하는 일본 기업 수가 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손 부족을 원인으로 도산한 기업은 올해 9월 말까지 299곳에 달했다. 이달 안에 지난해 연간 도산 건수(317건)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까지 도산 기업 증가 속도가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 올해 400여 개 기업이 일손 부족 탓에 문을 닫을 전망이다.

도쿄상공리서치가 도산 사유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할 직원을 구하지 못한 ‘구인난형 도산’(40건)이 전년 동기 대비 48.1%나 증가했다. 이미 지난해 연간 수준(35건)을 넘어섰다. 도쿄에 있는 태양광발전시스템 설계 및 설치전문 회사 JIN테크놀로지처럼 일본 곳곳에서 태양광 시설 공사 수요가 증가했음에도 일손 부족으로 사업을 포기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인력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인건비를 올리다가 버티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올 들어 인건비 상승에 따른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은 사례는 모두 17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6% 증가했다. 구직자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운수업 분야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지난달에만 마코토곤포운송 등 다수의 포장이사업체가 인건비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했다.

이와 함께 핵심 인력의 이직·전직에 따른 도산도 17건(전년 동기 대비 41.6% 증가)을 기록했다. 경영진의 은퇴와 사망에도 불구하고 후계자를 구하지 못한 경우가 전체의 75.25%(225건)로 가장 많아 기업 내 ‘머리’와 ‘손발’이 모두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금 규모별로는 1000만엔(약 1억141만원) 미만 소기업이 전체 도산 업체의 55.8%를 차지했다. 도쿄상공리서치는 “일손 부족이 블루칼라 직종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중소 영세업체들은 일손 부족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앞다퉈 사업을 접고 있다”고 분석했다.

늘어나는 공동 영업

일손 부족 문제가 일본 경제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인력 활용 대책이 나오고 있다. 인력난을 인공지능(AI)이나 로봇 등을 활용해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NTT동일본은 고객센터에 소비자 문의사항을 AI가 답변하는 자동회화 프로그램을 이달 도입했다. 상담 전문인력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첨단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나선 것이다.

경쟁 기업 간 공동 운송망을 구축하는 일도 늘고 있다. 아사히음료와 기린은 올해 6월부터 시즈오카현 공장 등에서 화물 컨테이너를 함께 쓰고 있다. 아사히와 기린, 산토리, 삿포로 등 일본 4대 맥주업체들도 지난해부터 홋카이도와 간사이, 주고쿠 등에서 공동 화물열차를 이용하고 있다. 밋칸과 닛신푸드, 하우스식품 등은 2016년부터 홋카이도에서 상품 공동 수송을 하고 있다.

직원 이직을 막기 위해 당근을 내놓는 기업도 많아졌다. 꼬치구이 체인인 구시카쓰다나카홀딩스는 올해 4월 신입사원끼리 운용하는 교육센터점을 도쿄에 개설해 선배 사원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퇴사하는 사례를 줄이고 있다. 화장품 판매업체 판클은 직원들의 이직을 막기 위해 지난 4월 직영점 판매계약직 1000여 명을 정규직화하기도 했다.

외국인 고용 확대도 본격 추진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2일 공개한 외국인 현장근로자 유입 확대 법안에 따르면 일손이 부족한 분야의 기술을 지닌 외국인에게는 최대 5년까지 일할 수 있는 비자가 발급된다. 전문기술 보유자로 일본어능력시험에 합격하면 영주권과 함께 가족도 일본으로 데려올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한국

산업현장 경기침체 한파
공장 가동률 떨어지고
재고는 계속해서 쌓여

올들어 도산 신청 1145건
작년보다 10% 치솟아
기업들 해외탈출도 줄이어

일본과 달리 한국 기업들은 일감을 찾지 못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조선, 해운,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경기가 식으면서 대기업 협력업체 등 중소기업의 부도가 크게 늘고 있다. 또 최저임금 인상에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으로 영세 자영업자가 폐업에 내몰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돼 한계기업과 한계 자영업자의 위기가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일감 기근으로 폐업 내몰리는 기업들

15일 대법원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기업 도산 신청은 1145건(법정관리 612건, 법인파산 533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031건)보다 10.1% 늘어난 수치다. 도산은 법정관리와 파산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대로라면 한진해운 파산 등의 여파로 연간 도산 신청이 역대 최대(1674건)였던 2016년보다 도산 신청 건수가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2016년엔 8월 말까지 도산 신청 건수가 올해보다 적은 1131건이었다.

폐업기업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폐업기업은 2015년에 79만여 개였지만 2016년 90만 개를 넘었으며 지난해에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기업들이 문을 닫는 이유는 경기 침체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제조업 가동률은 올 1분기(1~3월)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이후 최저인 71.0%를 기록한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가동률은 지난 8월 75.7%로 반등했지만 1990년부터 2011년까지 평균 77.9%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제조업 가동률이 75.7%라는 것은 공장 100개 가운데 24개가량은 운영을 안 한다는 뜻이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국내 주력 업종의 가동률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기계장비 제조업은 고점 대비 30% 이상 급락했고, 자동차는 2015년 이후 하락세다.

공장이 안 돌아가는데도 재고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 8월 출하량 대비 재고 비율은 107.4%에 달했다. 제품 100개를 만들면 이 중 7.4개는 창고에 있다는 얘기다. 부산에서 중견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한 기업인은 “부산 지역에서 가장 큰 산업단지인 녹산공단의 가동률이 60%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지역 경제를 이끌던 대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위기에 빠지면서 일감이 줄어든 데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비용 증가 악재가 겹쳐 외환위기 이후 기업하기 가장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감 찾아 외국으로 떠나

국내에서 먹거리를 찾기 어렵다 보니 기업들은 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제조업체들이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함에 따라 국내 일감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제조업체들의 해외 투자는 73억8000만달러로 전년 동기(29억2400만달러)보다 152.4% 늘어났다. 상반기에 이미 전년 한 해(78억8700만달러)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재계 관계자는 “법인세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국내 경영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국내 제조업이 해외로 내몰리는 것”이라며 “무역 전쟁 등으로 인한 관세 부과가 현실이 되면 기업들의 이탈은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으로 빠져나갔던 국내 기업의 복귀 실적도 저조했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국정감사 자료에서 2014년부터 올 8월까지 국내에 복귀한 ‘유턴 기업’이 50곳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중소기업이 48곳, 중견기업이 2곳이었으며 대기업은 한 곳도 국내에 복귀하지 않았다. 국내에 유턴한 중소기업 중 일부는 국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외국으로 가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저금리 시대의 종말도 기업들이 위기로 내몰리는 주요 원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3년 2526개이던 ‘한계 중소기업’은 2015년 2754개로 꾸준히 늘어나다 지난해 2730개를 기록했다. 한계 중소기업이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지표인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중소기업을 말한다. 한 은행 부행장은 “금리가 인상되면 은행들은 한계차주들을 솎아내며 건전성 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연체 대출을 엄격하게 관리하면 한계 상황에 몰린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은 대규모 도산을 피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도쿄=김동욱/김순신/황정환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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