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념 전 부총리 인터뷰 전문

입력 2018-10-15 19:18   수정 2018-10-16 11:14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78)은 한국 경제 발전사의 산증인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에 고등고시에 합격, 경제 관료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반세기 넘도록 경제 발전의 현장을 지켜온 원로로서 진 전 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현재와 앞날에 대해 할 말이 많아보였다. 현장을 떠난 지 꽤 세월이 흘렀지만, 경제 현안에 대한 답변에 막힘이 없었다. 사안의 핵심을 꿰뚫고,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했다. 진 전 부총리와의 인터뷰는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개인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인터뷰 내내 ‘도전’과 ‘혁신’, ‘창의’와 ‘역동’이란 단어를 유독 강조했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

▶지난 반세기 한국 경제와 사회 발전을 평가하신다면.
“우리 경제는 한마디로 경제개발사에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내가 고시에 합격한 1962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수출은 1억2000만 달러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됐나요. 소득은 3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고, 수출은 하루에 25억 달러에 육박합니다. 엄청난 변화이지요. 그 결과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진입했고, 오랫동안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했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과거에 대해 평가는 제대로 하고, 부족했던 것이 뭔가를 반성하면서 이걸 채우는 쪽으로 가야지, 자꾸 과거를 부정하는 식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예요.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룩한 경제 사회 발전의 성과에 대해 보람과 자긍심을 갖고 앞으로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국력을 모아도 부족한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요즘 보면 성장론자들은 퇴조하고 분배론자들이 득세하는 그런 분위기를 느낍니다. 그런데 성장 없는 분배라는 게 없어요. 성장과 분배를 어떻게 속도감을 가지고 조정할 것이냐, 이게 정부의 역할이지, 성장동력 없이 분배에 치중하다가 중진국 함정에 빠져 허덕인 나라들의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유럽의 몇 나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성장론자다, 분배론자다 해서 칼로 자르듯이 가르지 말고, 성장을 하되 좀 더 좋은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또 이런 성장의 힘을 바탕으로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곧 함께하는 시장경제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경제 활력은 떨어지고,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요. 특히 청년들은 취직도 안되고 연애도, 결혼도 안되는 ‘3포세대’ 이런 얘기까지 나오는 데 대해선 매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대학교 다닐 때 입도선매로 취직되고, 미국도 완전고용 상태이면서 성장률도 우리를 앞서잖아요. 우리만 저성장의 트랩에 갇혀 있다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경제는 심리입니다.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이 떨어지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일본의 경우를 봅시다. 과거 일본을 떠났던 많은 기업들이 다시 돌아가고 있어요. 고용 유연성 등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으로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국내 투자보다는 해외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버텨낼 재간이 없어든요. 이런 환경을 바꾸지 않고 기업들한테 투자하라고 하면 누가 하나요? 기업이 열심히 뛰도록 하고, 그래서 투자해 일자리 만들고, 수출해 외화 벌어들이고, 그런 게 애국자라고 격려해야 합니다. 결국 기업이 챔피언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보면 끄떡하면 압수수색한다, 조사한다 해서 대기업 총수들 부르고, 국회에서도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수시로 오라가라합니다. 그러면 안돼요. 기업을 제대로 뛰게 내버려둬야 합니다.”

▶낙수효과, 더이상 기대난망인가요.

“글쎄요. 물론 낙수효과라는 것은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되고, 또 다양화되는 과정에서 옛날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우리 기업들이 너도나도 해외로 나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국내 고용이나 소득으로 연결이 안되고, 이른바 동반성장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그만큼 줄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수출산업은 안되고, 대기업은 일자리도 제대로 만들지 않는다고 비난만 해서는 문제 해결이 안됩니다. 경제 생태계 복원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연계성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여기에 추가해 고용 탄성치가 높은 글로벌 서비스산업에 집중해 보완할 생각을 해야지 낙수효과가 적다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분수만 뿜어내면 결국 국민 부담만 키우고, 세금만 잘못 쓰는 꼴이 됩니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요. 오히려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훼손하는 그런 걱정이 큽니다.”

▶정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합니까.

“정부와 시장의 역할은 경제발전 단계와 글로벌화 진행 정도에 따라서 변화하는 겁니다. 개발 초기인 1960년대 초, 그때는 시장이 없었잖아요. 그때는 정부가 시장을 만들면서 경제를 꾸려가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던 상황입니다. 그것을 이른바 ‘지도받는 자본주의(guided capitalism)’라고 해서 정부가 산업분야에 가야할 목표를 먼저 세우고, 비료공장은 어떻게, 철강공장은 어떻게, 섬유공장은 어떻게 하는 식으로 모든 자원을 정부가 배분해 통제했어요. 때로는 세금도 깎아주고, 특히 수출산업에 대해서는 금리도 차별적으로 낮게 해주고. 이런 식으로 꾸려왔는데. 그 당시에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봐요. 그러나 1970년대 후반까지 중화학공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래서 1980년대 들어 개방정책을 썼던 거 아닙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정부도 정부실패가 있고, 시장도 시장실패가 있는 게 맞아요. 그렇다고 정부는 시장실패를 보완하고 책임경영의 준칙을 모니터링하는 정도로 끝나야지, 정부가 직접 축구선수로 나서 포워드 역할을 하는 식으로 직접 뛰어서는 안됩니다. 그건 비효율을 낳을 뿐입니다. 과거처럼 특정 산업을 육성하겠다, 이럴 능력도 없어요. 모든 건 민간 부문에 맡기고, 정부는 시장이 할 수 없는 일, 예컨대 노인대책이나 사회안전망,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한 역할은 정부가 해줘야죠. 복지시스템 같은 공공재는 정부가 맡아야 하지만 시장 영역까지 정부가 개입할 경우 생태계 자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기름값이 비싸다고 하니까 알뜰주유소를 정부가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실패작 아닙니까? 이런 우를 더 이상 범하면 안됩니다.”

정부 정책방향은 어떻게

▶혁신성장 요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기존 산업의 혁신을 어떻게 일으킬 것이냐, 예를 들어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같이 기존 산업을 첨단 정보기술(IT)이나 인공지능(AI)과 접목시켜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죠. 다른 한쪽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그 분야에 들어와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혁신성장이야 말로 성장의 핵심입니다.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은 혁신성장 없이는 사상누각이라고 봐요. 소득없이 어떻게 소득주도성장이 됩니까. 소득을 만들어내야지. 모두가 혁신성장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만 말만 많았지, 과연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이 없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혁신성장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우선 기존 주력산업은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합니다. 조선산업을 보세요. 제 때 구조조정에 실패해 결국 무너지니까 파급이 엄청나잖아요. 지금 자동차산업도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기존 산업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 세팅하고 업그레이드시키는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산업분야는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 등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열어줘야합니다. 중국을 보세요. 중국의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기업들이 20년도 안돼서 미국의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기업에 도전장을 내밀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잖아요. AI로 정착된 화웨이 가전제품이 우리 가전기업에 굉장한 위협을 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중국은 국가 체제에 위해를 주지 않는 한, ‘선(先)시행 후(後)규제’로 모든 걸 풀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 기업하는 분들을 만나면 이런 얘길 합니다. ‘제발 중국만큼만 해다오’ 사회주의 정치적 색깔만 배면 중국이 오히려 우리보다 시장친화적입니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도 정신 바짝차려야된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죠.”

▶규제개혁, 모든 정부의 슬로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게 안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규제개혁은 정치적 의지와 결단의 문제입니다. 규제개혁이 어려운 건 기존 규제 뒤에 기득권이 있고 정치세력화가 돼있기 때문이예요. 예를 들어 원격의료라든 지, 영리병원이라든 지, 이런건 전부 의사집단이 뒤에 있고, 이들이 정치세력화가 돼있어요. 관련 부처 공무원 역시 과거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도 큽니다. 새로운 기술, 산업 분야인데 과거의 낡은 잣대로 평가하려는 성향이 강해요. 어찌보면 공무원도 기득권 세력에 포합됩니다. 이걸 진짜 빅뱅한다, 이런 결연한 자세를 갖지 않으면 해결을 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서비스산업발전법이라는 것도 이명박 정부 때 국회에 제출된 건데 지금까지 해결을 못하고 있잖아요. 이른바 영리병원 논쟁 때문인데,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의사 출신을 데려다놓고, 지역구 관리하는 국회의원을 데려다놓는데 돌파가 되나요. 문제의 본질을 갖고 진짜 난상토론이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같이 우수한 의료인력, 우수한 의료장비를 갖고 있으면서 태국 만큼도 의료관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표를 중시하는 정치집단이 버티고 있는 한 규제혁파는 요원합니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지도자의 결단력이 결국 관건입니다.”

시장의 활력 어떻게 되살릴까

▶기업가 정신이 사라졌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요.

“기업의 잘못된 관행도 많죠. 그래도 수출해서 외화 벌어들이고, 일자리 만들고, 세금 내고, 이 게 기업들이 해온 거 아닙니까? 정치권 누구보다도 더 애국적인 사람들이에요. 이런 사람들을 적폐의 대상으로 몰고 까딱하면 압수수색하고, 세무조사하고, 국회에서도 무슨 피의자처럼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오라 하고, 그런 나라가 세상에 어딨습니까? 기업은 웅크리면 한 단계 더 뛸 수 있지만 움츠리면 기어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국제 경제환경은 계속 치열하게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 기업들의 위협, 일본 기업들의 반격, 이런 것들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마음껏 뛰어도 부족한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움츠릴 수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투자를 생각하고 고용을 생각할수 있냐 이겁니다. 마음껏 뛸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지원만 해주고 간섭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이 뛰고, 기업이 뛰어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그런데 아직도 과거 낡은 관행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기업들 오라 해서 당신 얼마 투자할거냐, 고용 얼마나 늘릴거냐며 계획서 받고...그게 지금 할 일인가요? 기업이란 게 돈이 되고 사업성이 있다고 하면 동물적으로 투자하는 것이지, 정부 하란다고 투자할 수는 없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기업들 책임은 없을까요.

“경영계도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일감 몰아주기부터 하청업체 가격 쥐어짜기 같은 관행은 차제에 스스로 고쳐야 합니다. 경영단체를 만날 때마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자꾸 정부 눈치보고 할 얘기도 못하고 규제만 풀어달라 하지말고, 우리는 앞으로 낡은 경영관행 개선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겠으니 지켜봐다오. 대신 우리 기업들 편하게 뛸 수 있도록 지켜만 봐다오. 이런 노력을 왜 안하냔 말이죠.”

▶전통 주력 제조업이 위기입니다.

“요즘 제조업은 다 맛이 갔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주 잘못이라고 봐요. 독일을 보면, 인더스트리 4.0이란 혁신 정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산업을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냐, 여기에 집중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사민당 당수의 대 결단도 큰 역할을 했어요. 정권을 뺏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회 경제 전반을 개혁하는 ‘아젠다 2010’을 추진했습니다. 표를 좇는 정치꾼이 아니고, 독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가가 되겠다 해서 이런 결단을 한 것입나다. 이런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독일 경제가 건강하게 가고 있거든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요.

“기존 산업은 과감히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덩치를 키우기보다 효율화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해요. 조선, 해운산업도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쳐 지금 이 지경이 된 것 아닌가요? 정부의 직무태만이라고 봐요. 정권이 바뀌고 하는 과정에서 총대메고 나섰다가 잘못하면 나만 뒤집어쓴다, 이런 인식도 굉장히 크게 작용했어요. 지금 정부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을 절대 게을리해선 안됩니다. 자동차 산업도 다들 위기라고들 하잖아요.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조선, 해운산업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몰려올 겁니다. 핀란드 노키아가 어려웠을 때 근로자를 전직 훈련시키고, 새로운 산업분야를 일으키고 하면서 복원력을 가졌듯이, 우리도 서둘러야 합니다.”

▶고비용·저효율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그래서 제발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확보방안을 놓고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끝장토론이라도 해야 한다고 봐요. 현대자동차만 놓고 보더라도 매출이 줄고 있잖아요. 독일 미국 등은 자동차 신기술 개발 진행속도가 굉장히 빠르게 가고 있는데, 현대차는 통상쪽의 제약, 기술에서의 한계, 고임금 저생산성의 문제 등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어요. 오죽하면 제2대 현대차 노조위원장했던 사람이 작년에 그런 얘기를 했을까요. 자기가 볼 때도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이대로 가면 미래가 없다고...지금이라도 우리 자동차산업 경쟁력은 어느 수준이고, 생산 코스트는 어느 정도이고, 노사관계는 어떤 상황이고, 기술은 어느 단계인지를 놓고 노사가 만나 냉철하게 판단하고 각자 역할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래서 연봉 8000만원 이상인 대기업 노동조합은 예컨대 ‘3년동안 우리가 임금을 동결할 테니 대신 납품단가를 올려 2,3차 협력업체와 비정규직을 끌어안자’는 제안을 할 정도로 특단의 노력을 보여줘야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봐요. 노사정 사회적 대화도 자꾸 큰 거만 얘기하지 말고 이런 실질적인 것을 도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도요타가 왜 이렇게 분규없이 잘 나가는지, 노사정은 이런 걸 공부하고 벤치마킹하려는 노력이 가장 시급해요.”

▶신산업 육성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새로운 산업을 어떻게 일으킬 것이냐, 이 게 혁신성장의 핵심입니다. 돈이나 주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예요. 연구개발(R&D)과 인력양성을 위한 교육이 핵심인데, 그동안 교육개혁을 제대로 한 게 있나요? 말로만 4차 산업혁명을 외치지 실행을 한 것은 없어요.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구조개혁을 추진한 결과 소니와 파나소닉 같은 기업들도 부활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만 구조개혁이 지연되고, 과거청산에 매몰돼 미래 준비가 안되고 있는 거예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일자리 쇼크 해법

▶고용쇼크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해법은 무엇입니까.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컨셉이 잘못 잡혔어요. 일자리는 정부가 만든다는 관점으로 접근한 건데 그건 아니죠. 역대 정부가 그랬듯이 지금 정부도 슈퍼예산 짜서 일자리에 몇십조를 퍼붇고 있는데, 그렇다고 고용상황 나아진 게 없잖아요. 오히려 지금 일자리가 늘어나는 분야를 보세요.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그런 쪽만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당초에 공약에 83만개 공무원 일자리 만든다고 해서 그거 입안한 사람하고 토론도 했는데 기본적으로 컨셉이 잘못된거다는 게 내 주장이었어요. 국민생활 안전이나 환경, 식품, 소방, 복지서비스 관련 인력을 늘리겠다는 건 이해하지만, 어떻게 정부가 이런 공공 부문에서만 83만개 일자리를 만드나요? 오히려 성과는 나빠지고 있잖아요. 국민 안전과 복지전달체계 등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일자리는 민간 기업에서 만든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정부는 민간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책의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일자리 정책의 속도 조절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이런 정책도 좀 더 유연성있게 해서 기존 영세사업자들의 고통이 더 이상 계속되도록 해선 안됩니다. 최저임금만 하더라도 내년까지 29% 넘게 올라가는데, 언제까지 정부가 세금 갖고 보전할 건가요? 그런 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선과 악으로 경제 문제를 접근해선 안돼요. 근로시간 단축도 ‘과로사회가 되면 되겠냐’는 선한 의도로 시작한 건데, 연구개발(R&D)이나 긴급한 시설보수 이런 거 하는 데는 주 52시간 딱 잘라 근로시간을 제약해버리면 옴짝달짝할 수가 없어요. 업종별 특성을 감안해서 탄력근로시간 단위를 1년까지 확대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예요. 목표는 좋은 데 급하게 가버리니까 문제인 겁니다. 선한 정책만 갖고 성공하는 정부 없습니다. 속도와 방법에 대해 유연성을 갖고 대응하는 정부야 말로 스마트 정부예요.”

남북 협력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남북 화해와 협력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요.

“남북 경제협력은 인프라, 자원, 노동시장 등 여러 면에서 잠재력을 갖고 있고 새로운 도약의 전기로 삼을 수 있는 프론티어다, 이렇게 봅니다. 이런 때일 수록 저는 좀더 쿨하게 준비를 해야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통일이 반드시 대박을 담보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혜와 전략으로 아주 세밀하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좀 아쉬운 점이 많아요. 또 우리가 남북경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물론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설사 북핵폐기가 진전을 본다 하더라도 우리 기업들이 당장 들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닐 겁니다. 기업들이 들어갈 수 있는 제도가 북한에 갖춰져야 해요. 무엇보다 모든 통계자료를 객관적으로 만들어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하도록 해야 합니다. IMF에 가입이 돼야 세계은행, ADB 등에 다 가입이 될 수 있어요. 국제기구에 가입한다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경제 시스템을 바꾸도록 유도한다는 것인데, 북한이 외국인 투자보장제도 등 시스템을 갖춰야 비로소 기업들이 진출해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는 겁니다. 국제기구와 경험을 많이 가진 우리가 이런 점을 미리 준비하고 챙겨야 한다고 봐요.”

미래 한국을 위한 준비는

▶20년 후 바람직한 한국의 경제 사회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성장과 분배가 적절히 조화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회 안전망을 튼튼히 갖추고, 이런 것이 경제 정책의 목표 아닙니까? 거기에다가 문화 역시 굉장히 중요해요. 요즘같이 흑백논리, 진영논리로 모든 걸 재단한다면 통합이 되겠습니까? 모든 사고가 30년전, 50년전으로 돌아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요. 진영논리를 떠나 배려와 신뢰를 갖는 사회, 그래서 국제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나라, 이 게 내가 그려보는 한국의 미래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모두가 초심을 갖고 노력해야 해요.”

▶그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어떤 성찰과 각오를 해야 합니까.

“현재 우리 경제상황은 매우 엄중해요. 모든 국민들이 다같이 정신 바짝차려야 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기본적인 키워드는 뭐냐, ‘기본으로 돌아가자’ 이겁니다. ‘혁신성장 없는 소득주도성장은 허구다’ 이것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생산성 성장이 없는 임금성장만으로 성장하는 기업은 없다. 포용적 성장도 방향과 속도조절이 핵심이다. 공공재 분야를 제외한 분야에는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된다. 기업은 일자리 창출의 챔피언이다’ 이런 생각을 기본으로 세우면서 우리 경제 주체들이 성찰과 각오를 해야 합니다.”

▶각 경제 주체들은 어떤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까.

“기업은 이제까지 노력을 많이 해 왔지만 고(故) 정주영, 이병철 회장이 가졌던 산업보국의 창업자 정신을 다시한번 되새겼으면 합니다. 또 갑질은 원천 척결하고 협력업체와 동반성장하고, 근로자와 파트너십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공정·투명·책임경영을 실천하겠다는 걸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노동조합도 여러가지 입장에서 근로자 문제를 같이 생각해야 해요. 노동존중만 앞세우지 말고 경영존중도 인정해줘야 합니다. 고용 안정성과 동시에 노동 유연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정부는 굉장히 엄중한 현 상황에서 철저한 미래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담론만 앞세우지 말고 실용, 지속가능성을 생각해야 해요. 이념과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정부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을 뛰게 해줘야 합니다. 언론 역시 책임윤리를 되새길 필요가 있어요. 갈등조정 역할을 해야지 갈등증폭제가 돼선 안됩니다.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하는 언론, 국민 사기진작에 도움이 되는 언론도 필요해요. 결론적으로 도전과 혁신은 우리 소명입니다. 한국인의 창의성과 융통성은 세계 1등입니다. K팝 방탄소년단(BTS)을 보세요. 이게 한국인의 끼 아닙니까? 서로 인정하고, 기 세워주면 누구든 거칠 것이 없어요. 신뢰·소통·통합의 리더십에 답이 있습니다.”

▶정치권에 당부하고 싶은 점은.

“오늘과 내일의 세계는 우리의 담대한 도전을 요구하고 있어요. 담대한 도전, 이것은 패거리 논쟁이 아닌 비전 공유와 범국민적 열정을 함께 모아야 가능합니다. 정치권은 과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정치를 하고 있는가, 30년 전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는가를 자문해봐야 합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다음 선거를 생각하는 정치꾼으로는 나라 발전이 안돼요.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정치가가 돼야 합니다. 임기 동안 정치를 잘 해서 국민의 평가를 받도록 해야지, 다음 선거를 위해 포퓰리즘 정치에만 몰두해선 안된다는 거죠. 내후년이면 벌써 다음 총선 아닙니까?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정치꾼이 되지 말고,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정치가가 몇분이라도 있어주면 좋겠다 이겁니다.”

정리=성수영/사진=김범준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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