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전 모두 외국인이에요. 지금은 재일교포 3세라는 게 제 단점이지만, 언젠간 넘어야할 벽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공대유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삶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 1998년 고등학교 3학년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배우 일을 시작하고, 한국으로 촬영을 오기 전까진 한국어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땅을 밟은지 16년 만에 공대유는 완벽한 한국어 발음을 구사한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일본에서 자랐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 할 정도일 뿐 아니라 한국어와 일본어의 세밀한 뉘앙스 차이까지 구별하면서 각기 다른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을 정도다. 공대유의 이런 능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 지난 9월 30일 종영한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었다.
공대유는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일본어 대사 전체 검수를 맡고, 배우들의 일본어를 지도하는 일본어 담당 총괄이었다. 또한 일본군 사사키 소좌 역을 연기하는 배우이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와 배우, 1인 2역을 한 셈이다. '미스터 션샤인' 촬영장에서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낸 공대유를 만났다.
▶ '미스터 션샤인'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처음엔 배우 김남희, 유연석, 윤주만의 일본어를 지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제가 일본에서 한국 연예인들 팬미팅 사회도 많이 봤는데, 그 인연으로 연락들을 주셨다. 각각의 매니지먼트를 통해 제안을 받았고, '저는 기본 틀만 볼 테니, 세밀한 행동이나 부분들은 감독님이랑 상의해서 잡아요' 라고 했는데, 현장 검수자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대본 일어 부분 검수를 부탁한다는 얘길 듣게 됐고, 최종 검수자와 지도자로 합류하게 됐다.
▶ 배우로도 참여하는데.
사실 배우로도 제안을 받고, '스태프는 안하고 배우만 할래요' 할 수도 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스태프를 하게 되면 너무나 대단한 배우들, 최고의 연출진을 매일매일 볼 수 있지않나. 그런 환경에 들어가고 싶었다.
▶ 똑같이 일본어를 쓰고 있지만 각 캐릭터마다 느낌이 다르다.
(웃으며) 작품을 시작하면서 제일 고민했던 부분도 그것이다. 제가 했던 일은 단순히 일어 대사를 봐주는 게 아니라 톤이나 리듬을 다듬는 작업이었다. (당시 작업했던 대본 일부를 보여주면서) 동매(유연석 분)는 사무라이 톤으로 일본에서도 사극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고어 말투를 썼고, 그 외 출연진들은 현대적인 느낌이 나도록 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극 초반까진 대본이 나올 때마다 2시간 정도 레슨도 했다. 확실히 이병헌 씨나 유연석 씨는 배우로서 동력이 뛰어나서인지 습득력도 빨랐다. 극중 배역에 맡는 자신만의 리듬을 함께 만들어갔다.
▶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런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을 작업이었을 것 같다.
누가 튀는게 아니라 모두가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 캐릭터마다 일본어를 쓰는 상황, 한국어를 쓰는 상황에 따라서 변화되는 심경들이 있는데, 이걸 보여주고 싶었다. 동매의 경우 한국어를 쓸 때와 일본어를 쓸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르지 않나. 그래서 그런 리듬, 톤, 말의 억양과 속도를 계속 찾았다.
▶ 일본어를 잘하는 한국 사람들도 많은데.
일상 회화와 극에서 보여지는 일본어는 차이가 있다. 촬영장에서도 이정현, 박광서 같은 배우들은 생활 일본어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캐릭터에 맞는 느낌을 주기 위해 다듬는 과정이 필요했다. 언어를 위한 연기가 아니라, 연기를 할 때 나오는 언어가 일본어라는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다. 일본인 흉내를 내는 한국인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 가장 신경썼던 캐릭터는 누굴까.
김남희 군이 연기했던 다카시 역이다. 일본어, 한국어, 영어를 모두 쓰는데 어떤 언어로도 감정 표현을 원할히 할 수 없던 캐릭터였다. '습니다'를 '슬무이다' 이렇게 'ㄹ'에 포인트를 주는 걸로 콘셉트를 잡았다. 일본인이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느낌으로.
▶ 참여하면서도 '이건 정말 뿌듯했다' 하는 순간이 있었을까.
극 초반에 유진초이(이병헌 분)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다카시가 '유어 웨루컴'(you're welcome) 하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엔 그 대사가 없었다. 제가 보기엔 그 장면에서 다카시가 존재감을 보여줘야 이후에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이 '아, 저 사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그 장면의 마무리를 다카시가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현장에서 '유어 웨루컴' 대사를 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감독님도 흔쾌히 '좋다'고 하셔서 들어가게 됐다.
▶ 일본어 감수에 대한 김은숙 작가의 반응은 어땠나.
별 말씀이 없으셨다. 저도 무서워서 말을 못 걸어보고 (웃음). 아무 말이 없었던 게 저한테는 가장 큰 칭찬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김은숙 작가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게, 작품 안에 한국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까지 4개 언어가 등장한다. 24부 안에 이렇게 다양한 언어로 집중력있게 밀고 나갈 수 있다는게 어쩌면 모험일 수 있는데, 대단한 것 같다.
▶ 처음부터 일본인 역에 일본 배우를 썼다면 어땠을까.
지금과 같은 힘은 생기지 않았을 것 같다. 일본 배우와 한국 배우는 생각부터 연기, 촬영 방식 등 모든 부분이 다르다. 공통적인 역사 인식도 없고, 대본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무엇보다 촬영 현장에서 관리하는 게 더 어려웠을 것 같다. 그분들 숙박비, 교통비 등 제작비도 많이 늘어났을 테고 (웃음).
▶ 역사 인식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극 초반에 논란이 있지 않았나.
이 이야기 자체가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허구의 캐릭터들이지 않나. 그래서 그 부분들이 그렇게 논란이 될 거라고는 개인적으로 예상하진 못했다.
▶ 일본어 감수자가 아니라 배우 공대유로서 '미스터 션샤인'이 어떤 작품이었는지도 궁금하다.
많은 배울 수 있는 현장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함께 호흡을 맞춘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또 스태프로 참여한 덕분에 현장 모든 사람들과 알고 지내서 연기를 할 때 더 유리했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에 쿠도 히나(김민정 분)와 칼싸움을 하는 장면은 14시간을 찍었는데, 케미가 좋다고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고생도 많이 했을 텐데.
정말 많이 했다. 고생밖에 없다(웃음). 그것도 사회 경험같다. 사기를 당할뻔 한 상황도 여러번 있었지만 다행히 아직은 없었다. 아직 신인이고, 뭘 뜯어낼 정도가 아니라 그런게 아닐까 싶다.
▶ 어떤 부분들이 힘들었을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모두 외국인으로 받아 들여진다. 한국에서 한국인 역할로 캐스팅될 수 있을까 싶다. 입장이나 인식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이런 부분들은 언젠간 넘어야할 벽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넘어야 한다면 제가 넘고 싶다.
▶ 그럼에도 왜 한국에서 배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가.
전 한국인이지 않나. 일본에서 처음 본 한국영화가 '공동경비구역 JSA'였다. 저희 아버지가 과묵하고, 보수적인 분이신데 갑자기 '영화보러 가자' 하셔서 '특이하네' 하고 갔다가 '정말 재밌다'하면서 나왔다. 그러다가 2002년도에 영화 전공 대학생들이 '한국에서 촬영하는데 도와주면 안되겠냐'고 제안을 했고, '이렇게 영역이 넓어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 일본에 있을 땐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저희 아버지, 어머니도 한국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신다. 제 또래 재일교포들이 거의 그렇다. 그렇지만 한국인이라는 뿌리는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이름도 한국식으로 하고, 대학교도 조총련 학교로 갔다. 교육에 대한 지원이 좋고, 언어를 배우기 위해 진학했는데, 무조건 기숙사 생활을 해야했다. 입학 전에 이미 배우 활동을 시작한 상태였고, 이후 '천국에 가장 가까운 남자'에 캐스팅이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 그래도 지금은 한국어와 일본어 모두 완벽하게 구사한다.
한국에 오자마다 연세대 어학당에서 공부했다. 그 후 일본에서는 NHK '한국어강좌'를 2년 정도 진행했다. 시청률도 나쁘지 않았다(웃음). Mnet 재팬에서 단독 프로그램 VJ도 하고. 그렇게 입소문이 나면서 일본에서 한국 연예인들이 팬미팅을 할 때 MC를 보게 됐다. 한국 가수들이 일본에 데뷔할 때 일본어 발음을 교정해 주고, 그러다가 한국에서 영화 '경성학교'에서 엄지원 씨와 심희섭 씨의 일본어를 봐주게 됐고, 슈퍼주니어 예성 씨가 일본 영화에 출연할 때도 일본어 레슨을 했다.
▶ 다재다능한 것 같다.
연기를 하는 것도 재밌고, 작품을 함께 다듬어 가는 것도 재밌다. 좀 더 어릴 때라면 스태프로 참여하는 게 심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MC도 하고, 일본어 지도도 하고, 다양한 작품으로 연기자로서 인사드리고 싶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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