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4주년 한경 인터뷰] 글렌 허버드 "임금 올리는 방법? 생산성 향상과 기술 발전, 두 가지뿐이다"

입력 2018-10-18 16:24   수정 2018-10-18 19:52

글렌 허버드 美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

만난 사람=김현석 뉴욕 특파원

韓, 순환출자 해소 요구하지만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어
경영진, 실적으로 평가받으면 돼

법인세 인하·규제완화 영향
美 경제, 당분간 잘나갈 것
경기침체는 2020년에나 올 듯

강달러가 신흥국 위기 변수지만
외환보유액 충분한 한국은
터키·아르헨과 완전히 달라



“미국 경제가 너무 좋습니다. 일부에서 경기 하강을 얘기하지만 빨라야 2020년에나 오지 않을까 합니다.”

글렌 허버드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은 미 경제를 긍정적으로 봤다. 경기 호황의 직접적인 배경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서 찾았다. 기업인들에게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법인세 감세를 통해 투자를 북돋았다고 강조했다.


뉴욕 맨해튼의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실에서 만난 허버드 교수는 그러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방법은 생산성 향상과 기술 발전 두 가지뿐”이라고 단언했다. 소득주도성장론을 묻자 “성장은 그런 식으로 이뤄지진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생산능력 확대 없이 근로자에게 임금을 더 줄 수 있다는 발상은 단순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설명이었다.

한국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편 압박에 대해서도 “기업은 실적으로 평가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실적이 나쁜 기업 경영진을 투자자들이 교체할 수 있게 시장이 잘 작동되게 하면 된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1년10개월이 지났습니다.

“기업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엔 성장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기부터 적극적인 성장 정책을 폈고 성장에 대한 기대 자체를 바꿔놨습니다. 법인세율도 내렸습니다. 과거 법인세는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세율이 인하되면서 미국 투자가 크게 늘었습니다. 해외에 있던 자금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지요. 규제 개혁도 잘 하고 있다고 봅니다. 무역정책은 좋은 요소와 나쁜 요소가 섞여있습니다. 지난달 타결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은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그리 달라 보이진 않습니다만 어쨌든 좋다고 봅니다. 하지만 중국을 힘으로 위협하는 건 걱정스러워요. 중국이 나쁜 무역관행을 일삼아왔지만,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전반적으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무역정책에는 물음표를 붙이겠습니다.”

▶정치권을 포함 미국 기류를 보면 무역전쟁에 찬성하는 쪽도 많은듯합니다.

“중국은 지식재산권을 도용하고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거대 국영회사를 직접 운영하는 등 정부 역할도 너무 큽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럽과 한국, 일본 등 우방국들과 힘을 합쳐 움직이는게 좋습니다. 중국의 행태에 분노하는 건 맞지만,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올바른 전략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중국과의 다툼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중국 지도부는 경제에 대해 매우 실리적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양국이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이룰거라 봅니다. 날선 공방이 오고가고 있지만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자동차에 대해 고율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관세 부과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할 필요가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식재산권이나 서비스가 아닌 철강, 자동차 같은 분야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건 구세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서 입니다. 미국이 자동차 산업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미국 소비자의 외국차에 대한 선호 때문이며 그것은 문제될 게 없습니다. 외국 회사들은 이미 미국에서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관세 부과가 가능하지만 그렇게 되질 않기 바랍니다.”

▶미국 정부는 USMCA에서 캐다나와 멕시코에 수입차 관세를 면제해주기로 했습니다. 한국차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안타깝게도 트럼프대통령이 1980년대식 낡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인들은 자동차가 당면 현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미국이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분야는 지적재산권과 서비스 분야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를 통상전쟁의 무기로 쓰면서 달러를 대체할 통화를 찾으려는 해외 움직임이 많습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계속 유지될 겁니다. 유동성이나 국가 신뢰도 등에서 달러를 대체할 만한 통화는 없다고 봅니다. 달러의 가치도 가까운 미래엔 떨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세제 개혁을 통해 해외에 있던 달러가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고, 미 중앙은행(Fed)도 다른 나라보다 금리 인상에서 앞서가고 있습니다. 두가지 요인 모두 달러화 강세 요인입니다.”

▶함께 컬럼비아대학에 재직중인 제프리 삭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급격한 기술 변화에서 소외된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파괴(disruption)’가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고 ‘세계화’가 두 번째 요인입니다. 다만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이런 소외된 유권자의 요구를 적절히 수용하고 있는 지는 의문으로 다른 정책이 필요합니다. 세계 지도자로서의 트럼프 대통령이 우려된다는 점에서는 삭스 교수와 생각이 같습니다. 저는 소외된 이들을 구제하는 게 미국을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삭스 교수와 트럼프 대통령의 중간쯤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고나 할까요.”

▶기술과 세계화에 뒤처진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그들의 임금을 올리고 싶다면 생산성과 기술을 높여야합니다. 생산성은 투자를 끌어내는 거시경제정책을 통해서, 기술은 직업훈련·교육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멋지게 들리진 않겠지만 직업교육은 정말 공들여야할 정책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한국에선 다양한 불평등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모든 선진국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장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수업 때면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기술 변화로 이익을 얻는 승자에 속한다. 항상 소외 계층과 함께 성장 부작용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소외 계층의 지지가 없으면 시장경제 체제가 유지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성장은 그런 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임금 증가는 결국 생산성 향상과 기술 발전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소비를 늘리기 위해 임금을 올린다는 생각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합니다. 포드자동차를 세운 헨리 포드의 유명한 ‘일당 5달러(Ford’s Five Dollar Day)’ 얘기를 들어봤는지 모르겠네요. 1913년 포드는 임금을 엄청나게 올렸습니다. 당시 일당 5달러는 자동차산업 평균 일당 2.7달러의 거의 두 배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포드가 임금을 올려 노동자들의 자동차 수요를 늘리려 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전혀 아닙니다. 포드는 임금 인상으로 좋은 인재를 끌어들여 생산성을 높이려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기업들에 더 많은 임금 지급을 권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마존이 창고직 근로자의 시간당 최저 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두고 유통업계가 모두 임금을 올려야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는 생산성의 개념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존이 아닌 다른 기업들은 지속되기 힘듭니다. 기업은 생산을 늘리는 것 이상으로 임금 인상을 할 수 없습니다. 임금을 높이려면 생산능력을 키워야합니다. 자본 등 요소 투입을 증가시키거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정부 정책이 생산요소 투입이나 생산성에 영향을 줄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생산능력 확대 없이 임금을 더 줄 수 있다는 발상은 그냥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미 중앙은행(Fed)이 내년까지 얼마나 더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십니까.

“Fed는 금리를 연 3%대까지 높이려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가 실질 금리나 인플레이션 목표(연간 2%)와 양립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봅니다. 다음 침체에 대비해 대응할 수도 있는 금리 수준이지요. 다만 중립 금리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 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변수가 있죠. 먼저 중국입니다. 그동안 중국의 원자재 수입은 신흥국 성장동력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증가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미국 달러인데, 많은 신흥국들은 돈을 빌릴 때 미국 달러로 빌렸지요. 달러 강세가 계속된다면 신흥국 위기가 가속화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기 때문에 터키, 아르헨티나 등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미국의 다음 경기 침체나 위기는 언제쯤 올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미국의 침체는 빨라야 2020년에나 올 것으로 전망합니다. 금융위기는 올 것 같지 않습니다만, 크게 불어난 그림자금융(섀도뱅킹)이나 재정 위기에 대한 우려는 있습니다. 만약 미국 등 거대한 경제가 지속불가능한 재정 정책을 지속한다면 어떤 시점엔 시장이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측가능한 범위내에선 미국 경제는 매우 좋습니다.”

▶경영대학원에 오래 재직하셨는데, 기업에 가장 좋은 지배구조라는 게 있습니까.

“100% 바람직한 구조는 없습니다. 미국은 뱅가드, 블랙록 등 대형 패시브펀드(지수 구성 비율에 따라 수동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들이 대기업을 지배하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대기업들에서 패시브펀드들이 8% 가량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걱정되는 것은 펀드들이 잘 단련된 주주로서 제대로 판단하느냐 하는 것인데, 지금까지는 그렇게 잘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대기업에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건 정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출자구조 등을 따질 게 아니라 기업이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갖췄는가를 따져보는 게 중요합니다.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회를 갖췄는가, 투자자들이 실적 나쁜 기업에 개입해 이사를 교체할 수 있는가, 그리고 법을 지키는가 여부가 그것입니다. 이런 잣대로 평가해 기준에 못 미치면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면 됩니다. 뱅가드 등 미국 펀드들은 기업들에 많은 지분을 갖고 있지만, 관계사간 지분구조를 조정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기업은 실적으로 평가하는 겁니다. 주주들은 궁극적으로 자본을 투자해 보상을 받는 걸 원하지요. 그래서 독립적 이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를 매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쟁적 금융시장이 작동한다면 지분보유가 문제될 게 없습니다. 삼성생명이 주주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지않는다면, 이사회는 다른 경영진을 찾아내겠지요. 정부는 투자자들이 실적이 나쁜 기업의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는 독립 이사회가 구성될 수 있도록 금융시장을 잘 작동되게 만들면 됩니다.”

▶모든 기업들이 팽창하는 아마존을 두려워합니다. 아마존이 모든 산업을 지배하는 날이 올까요.

“그렇게 되진 않을 겁니다. IBM, AT&T,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한 때 아마존과 같은 지배적인 기업이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힘을 잃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점은 데이터 지배력이 중요해졌다는 점입니다. 데이터를 많이 가진 쪽이 시장지배력을 가지는 시대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더라도, 데이터를 더 많이 보유한 경쟁자를 만나면 밀려날 수 있습니다. 기술회사와 관련해 고려할 점은 데이터 소유권 문제입니다. 아마존이나 페이스북이 내 데이터 소유자인지, 아니면 내가 아마존과 페이스북에 있는 내 데이터의 소유자인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반독점 당국이 전통적 관점이 아닌 이런 측면에서 기술기업들을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기업에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뜻입니까.

“데이터 소유권에 대해선 정부의 법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정부가 개입해 규제한다고 절대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진 않습니다.”

▶기술기업들은 데이터를 얻는 대신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전통적 독점 이론은 독점 회사들이 뭔가 혜택을 준다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독점 기업이 소비자와 거래하면서 다른 모든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지렛대(leverage)로 소비자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알 수 없습니다. 한반도 문제 등 돌발 변수가 생길 수도 있구요. 하지만 지금 상황만 놓고 본다면 재임 가능성이 꽤 높다고 봅니다. 공화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적할 후보가 별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민주당 후보는 평균 미국인과 동떨어진 생각을 가진 좌파 성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가정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8년간 재임하고 나면 세계질서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십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소동을 만들고 있지만, 기존의 세계질서나 기구는 생명력이 매우 강합니다. 물론 많은 상처가 생길 수는 있지요. 한 예로 NAFTA를 보세요. 여러 일이 많았지만 USMCA로 살아남았죠. USMCA는 NAFTA와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글렌 허버드 원장은…Fed 의장 바뀔 때마다 후보로 거론되는 석학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바뀔 때마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거시경제학자다.

25세에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 30대 초반이던 1991~1993년 미 재무부에서 세금정책 담당 부차관보로 일했고 2001~2003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으로서 감세 정책을 기획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04년부터 15년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으로 재임 중이다. 대표적 시장론자로 통한다.

△1957년생 △센트럴플로리다대 졸업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노스웨스턴대 교수 △컬럼비아대 교수 △미 재무부 부차관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OECD 경제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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