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춘호 기자 ] 1960~1980년대 한국 무역에서 시어스(Sears)는 미국 수출의 게이트웨이였다. 대우는 물론 삼성전자와 금성사(LG전자) 등 수출 기업들은 시어스를 통해 옷을 팔고 TV를 팔고 청소기 세탁기 등을 팔았다. 수출전사들은 제품 샘플을 들고 시카고로 달려가 시어스 바이어들에게 건넸다. 제안서 수정을 요구하면 며칠 밤샘하는 게 일쑤였다. 이들의 주문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 공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비록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수출이었지만 시어스 돌파는 그들의 지상과제였다. 한국 수출은 그렇게 성장해왔다.
아날로그 시대 카탈로그 승부
시어스는 그만큼 20세기 대중 소비사회를 이끈 엔진이었다. 제품을 카탈로그에 게재하고 우편이나 전화로 주문을 받는 무점포 방식을 도입한 기업이었다. 책과 모자, 피아노, 가금류, 총기,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상품을 팔았다. 미국 시골사람들은 도심 생활자 기분으로 시어스의 카탈로그를 집었다. 물론 철도 건설과 전화 발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탈로그는 19세기 말 이미 500페이지를 넘었으며 1000페이지를 향해 달렸다.
시어스는 1920년대 들어 새로운 혁신을 시도했다. 미국 전 지역을 통합하는 우편시스템과 인구 센서스 데이터 등을 통해 젊은 중산층의 도시 집중 현상을 읽어냈다.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 분석이 주효했다. 이 같은 데이터로 시어스는 백화점 사업을 벌여 나갔다. 그 결과 1970년대 말에는 미국 인구 4명 중 3명이 시어스에서 쇼핑하고 2400만 가구가 시어스의 신용카드를 가질 정도가 됐다. 1973년 시어스의 매출은 93억달러로 세계 6위였다.
하지만 시어스는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데이터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이런 빈틈을 노린 건 월마트였다. 월마트는 백화점 중심의 소매 유통산업이 근본적으로 할인형 소매점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때마침 불어온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철저히 고객의 성향을 살폈다. 사장될 상품은 배제하고 유행 상품을 적극 키웠다. 품목별 재고관리와 배송에 각별히 신경 쓰기 위해 1979년 데이터 웨어하우스(창고)를 세웠다. 1987년에는 인공위성까지 활용하면서 전국 매장에서 데이터 창고에 접근하기 쉽도록 했다.
디지털 시대 민첩성에 취약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통시장의 패권은 아마존으로 향했다. 아마존이 시어스와 비슷한 건 아이러니다. 처음에 책을 팔다가 모든 것을 파는 사이트로 변했다. 아마존의 온라인 사이트는 시어스 카탈로그의 온라인 판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시어스 지주회사인 시어스홀딩스가 15일 파산 신청을 냈다. 디지털 등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동산 등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린 게 화근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디지털 데이터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 데이터는 인간의 심리와 속성을 읽어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한다. 여기서 필요한 건 데이터를 읽어내는 리터러시(가독성)와 기민함, 그리고 해석의 다양성이다. 시어스는 기존 시장에 안주하고 기존 소비자만 쳐다봤다. 끊임없이 데이터를 활용하고 주기적으로 분석하는 데 실패했다.
철도시대에 탄생한 시어스다. 인터넷망에서 살아내는 건 기적일 수도 있다. 에드워드 램퍼트 시어스 회장은 시어스를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내몰지 말도록 간곡히 부탁했다. 시어스가 한국의 수출 역군들에겐 청춘이었고 희망이었다는 역사는 잊혀지지 않을 대목이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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