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나는 임시정부 품 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입력 2018-10-18 18:31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

김자동 지음 / 푸른역사 / 482쪽│2만원



[ 윤정현 기자 ] 동농 김가진(1846~1922)은 대한제국에서 농상공부대신, 법무대신을 지냈다. 고위관료로 일제 치하에서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항일 지하조직 단체 대동단에 몸 담고 총재로 활약했다. 1919년 10월엔 단둥을 거쳐 상하이로 떠났다. 당시 이미 73세 고령의 몸이었다.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을 맡았지만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다 3년 뒤 애석하게도 세상을 떴다. 아들(김의한, 건국훈장 독립장)과 며느리(정정화, 건국훈장 애족장)가 독립운동의 맥을 이어가던 중 1928년 임시정부 청사 인근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성재 이시영을 할아버지로 모셨던 아이, 백범 김구를 아저씨라고 불렀던 소년, 김가진의 손자 김자동이 태어났다.

올해 90세를 맞은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의 회고록 제목은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이다. 그는 자신의 평생을 이렇게 되짚는다. “나는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평생을 임시정부에 대한 기억을 품고 살았다. 임시정부는 내 삶의 뿌리였고 살아가는 길의 좌표였다.”

상하이에서 항저우, 난징과 광저우, 류저우를 지나 치장과 충칭으로 이어진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를 따라 그는 성장했다. 1945년 광복의 기쁨은 충칭에서 맞았다. 당시 학질 증세로 누워 있던 그는 “왜놈이 항복했다”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시내는 축제 분위기였다. 저자는 “중국인, 한국인 할 것 없이 모두 뒤엉켜 해방의 감격을 만끽하고 있었다”며 “나는 몸이 좋지 않은 것도 까마득히 잊은 채 축제 인파에 묻혀 밤새 시내를 돌아다녔다”고 회상한다.

해방 이듬해 27년 만에 가족은 환국했다. 하지만 온전히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독립된 조국은 남북으로 나뉘었고 부친은 납북됐다. 아버지와 친형제처럼 지냈던 백범은 “졸업생 중 내 친자식과 같은 학생이 있다”며 기꺼이 저자의 보성중학교 졸업식 축사를 하고 2주 뒤 암살당했다.

나라가 어지러운 와중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저자는 일간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임시정부 계승운동에 나서 2004년 사단법인 임정기념사업회 출범 이후 줄곧 회장으로 활동해 왔다. 아직 ‘공식적인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할아버지에 대해 “후손으로서 너무나 죄송스럽고 분한 일”이라며 안타까움도 술회한다. 국가보훈처가 김가진 선생에 대한 서훈을 보류하고 있어 상하이 땅에 묻힌 유해를 아직 모셔오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번 책은 2014년 출간된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에 이은 저자의 두 번째 회고록이다. 내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그때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살아온 격동기가 너무도 생생해서 한 번, 세밀한 기억력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애국자와 변절자 등 수많은 임시정부 주변 인사의 이름뿐 아니라 그들의 성격과 집안 내력, 후손들의 동향까지 기록했다. 한 사람의 회고록을 넘어 사료로서의 의미도 충분해 보인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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