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뉴어 보팅' 같은 차등의결권제도 전면 도입
단타 투기꾼 아니라 진정한 투자자 보호해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1일 규제 철폐의 일환으로 대주주나 경영진의 경영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벤처 창업 기업에 한해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벤처 창업 기업에는 다행한 일이지만 대다수 일반 기업에는 그림의 떡이어서 아쉬움과 불만이 크다. 전면적 차등의결권 제도를 상법에 도입해야 한다. 이유는 이렇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사모펀드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가 보유한 주식 중 10%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 제한 규제를 푼다는 것이다. 이로써 사모펀드가 적극적으로 기업 지분을 매입해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제 헤지펀드의 경영 간섭은 과거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같은 초대형 펀드의 공격에 전전긍긍했던 삼성이나 현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코스닥 상장 기업조차 국내 펀드들의 경영 간섭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게 생겼다. 궁극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해도 차등의결권 제도나 포이즌필 제도 같은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장치도 없는 한국에서 급격한 제도 변화는 시장에 큰 충격을 줄 것이다.
한국 증시는 주식 회전율(turnover ratio)이 매우 높다. 중국 선전거래소와 상하이거래소, 대만 타이베이거래소, 터키 이스탄불거래소 등과 함께 세계 5위 정도로 주식 회전율이 높다. 주식 회전율은 일정 기간 주식이 얼마나 활발하게 거래됐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주식 회전율은 유가증권시장이 152.10%, 코스닥시장은 284.87%였다. 상반기 6개월간 유가증권시장 상장주식 1주당 1.5차례 이상, 코스닥에서는 2.8차례 주인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1년으로 환산하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대략 4개월, 코스닥시장에서는 대략 2.1개월이면 주주가 바뀐다는 뜻이다. 어떤 회사는 3741.06%, 즉 6개월간 37번, 1년이면 74번 주주가 바뀌었다. 단타매매가 극심했다는 뜻이다. 내년 3월에 열릴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할 주주는 올 12월 말에 정해지는데 2개월 이상이 지난 내년 3월 정기총회일에는 이미 그 회사의 주주가 아닌 경우가 많다. 주주가 아닌 사람이 굳이 주주총회에 참석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주주총회 참석률도 저조하고 총회 성립도, 안건 가결도 어렵다. 그래서 그림자 투표(shadow voting: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해 다른 주주들의 투표 비율을 의안 결의에 그대로 적용하는 제도)라는 제도가 한국에서만 시행됐는데 이마저 지난해 12월 말로 폐지됐다.
이미 주주가 아닌 사람을 주주로 대우하고 잠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단타매매자도 장기투자자와 똑같이 대우하는 현행 의결권제도는 정의롭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단타매매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금방 떠날 사람, 이미 떠난 이들에게 회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단기간에 주식을 대량 매입해 주주라는 이름으로 회사에 이것저것 분별없는 요구를 하는 것을 방기(放棄)하는 것은 법률의 실패일 뿐이다. 진정한 주주는 주식을 함부로 내다 팔 수 없고, 수십 년간 회사와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장기 소유 주주들일 것이다. 회사법은 의결권 행사 문제와 관련, 이들을 제대로 대우해주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장기투자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가치의 장기적 상승을 바라는 투자자가 몰려들고, 회사도 장기적 성과에 역점을 둬 긴 호흡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지향하는 경영이 가능해진다. 투기 주주들의 요구에 굴복해 배당 잔치나 자산 처분 등에 매몰하다가는 위기 상황에 투입해야 할 실탄을 탕진하고, 회사의 수명은 저절로 단축될 수밖에 없다.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은 창사 이후 단 한 번도 배당해 본 일이 없다.
1주 1의결권 원칙은 각 회사가 지키고 싶으면 지키되, 반드시 지키라고 국가가 강요할 필요는 없는 원칙이다. 우선 프랑스처럼 2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 2개의 의결권을 주는 이른바 테뉴어 보팅(tenure voting) 제도부터 도입하자. 총회 성립이 수월해지고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수단도 제공하는 2중의 효과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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