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선박연료 환경규제 늦춘다…해운업계 '화색', 정유·조선 '당혹'

입력 2018-10-19 18:12  

국제해사기구 황산화물 감축
'IMO 2020' 시행 연기 추진
美 부담 100억弗 넘자 '깜짝'

친환경 투자 정유·조선社 '긴장'
연료비 걱정 더는 해운 '안도'
다음주 런던 IMO 회의 촉각



[ 김현석/박상용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SOx) 배출 규제 시행 시기(2020년 예정) 연기를 추진하고 있다. ‘IMO 2020’으로 불리는 이 규제는 해양을 다니는 유조선, 컨테이너선 등이 쓰는 선박유의 유황 함유 기준을 현재 3.5% 이하에서 0.5%(질량 기준) 이하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막대한 양의 선박유가 벙커C유에서 저유황유로 대체되면서 도미노처럼 석유 제품 전반의 가격 상승을 부를 수 있다.

이 같은 백악관의 움직임에 저유황유 생산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해 온 정유업계와 친환경 선박 발주 특수를 보려던 조선업계는 당혹해하고 있다. 반면 연료비 상승을 우려하던 해운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해운업계, 초대형 규제 해제 여부에 관심

‘IMO 2020’은 2020년 1월1일 발효된다. 미국 자동차 배출 기준의 2000배에 달하는 선박의 SOx 배출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SOx는 3대 대기오염 물질의 하나로, 선박이 전체 배출량의 약 13%를 차지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IMO 2020’이 시행되면 저유황유 등 일부 제품에 수요가 몰리면서 원유, 디젤, 가솔린 등 석유 제품 전반에 파급 효과가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현재 하루 20만 배럴 수준인 저유황유 수요가 2020년 120만 배럴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국제 유가(브렌트유 기준)는 최근 배럴당 80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다음달 이란 제재가 시작되면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 규제가 유가 등 미국 경제에 미칠 여파와 함께 2020년 대선에 미칠 부정적 영향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이 규제로 인해 세계 경제에 1000억달러가량, 미국에만 100억달러가 넘는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듣고 적잖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WSJ에 “IMO 합의를 철회하려는 것은 아니다”며 “이 규제가 ‘경험 축적 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시행되면 해운 및 에너지 시장에 미칠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완화에 해운 ‘맑음’, 정유·조선 ‘궂음’

IMO 관계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미 각국 의회가 비준한 조약을 뒤늦게 바꾸는 것도 그렇거니와 현실적으로 시행 중인 규제를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최근 유럽이 IMO에 미국처럼 규제 연기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게다가 미국과 캐나다는 2015년부터 자국 연안에서 운항하는 선박에 대해 ‘IMO 2020’보다 더 엄격한 배출가스 제한을 가하고 있다.

규제 연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미 공화당과 가까운 미국 석유·정유업계가 그렇다. 이들은 규제 시행으로 고급 석유를 판매하게 되면 수익이 늘어난다. 미국 정유사들은 2008년 이후 저유황유 생산을 위해 고도화설비에 약 1000억달러를 투자했다. 2018년 기준 글로벌 정유업체의 평균 고도화율은 41.3%(북미 57.1%)에 달한다.

세계 조선업계도 IMO 2020이 늦춰지면 해운사의 친환경 선박 발주, 선박의 스크러버(탈유황장비) 설치가 연기될 수 있어 반대하고 있다.

반면 세계 해운업계는 반기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2020년이 돼도 스크러버를 설치한 배는 전 세계의 5~10%에 불과할 것”이라며 “나머지 선박은 비싼 저유황유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이 규칙을 점진적으로 시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다음주 런던에서 열리는 IMO 회의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미 행정부는 다른 나라의 지원을 얻는 방안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김현석 특파원/박상용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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