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큰 변화보다 익숙한 서비스를 더욱 편리하게 만들 것"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적힌 약관을 보여주면서 개인정보를 제공하라는 것, 갑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SK텔레콤이 내년 1분기 전국민 모바일 신분증을 선보인다. SKT가 블록체인 산업에 본격 뛰어드는 신호탄이다. 전국민 모바일 신분증은 전화번호를 통해 개인 신원과 권한, 소유권 등을 증명할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이 한 전화번호를 오랜 기간 사용하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왜 신분증일까? SKT의 블록체인 사업을 총괄하는 오세현 블록체인사업개발 유닛장(전무·사진)은 “인터넷이나 홈쇼핑으로 물건을 사는데 개인정보를 5년이나 제공하고 제3자 제공까지 동의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위·변조와 해킹이 어려운 신뢰 네트워크인 블록체인을 활용해 개인의 데이터 주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멀지 않은 미래에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는 점, 블록체인 사업을 비교적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시스템통합(SI) 기업들과 달리 SKT는 일반인 체감도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분산형 어플리케이션(dApp)인 모바일 신분증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실행하면, 그동안 반복해야 했던 이용자 확인(KYC) 절차를 단순화하면서 개인정보 유출 우려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일이 주민등록번호, 신용카드 번호 등을 타인에게 알려주지 않고도 모바일 신분증만으로 본인 확인 절차를 마칠 수 있는 것이다.
모바일 신분증은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인 오 유닛장의 통찰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일이 본업인 이동통신사 SKT의 특성이 녹아든 결과물이다. 오 유닛장은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모든 일이 일종의 트랜잭션(Transaction)”이라며 “트랜잭션으로서의 일상 행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집중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트랜잭션의 주체와 대상, 방법이 달라져왔다. 4차 산업혁명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영역까지 비대면 거래가 가능해지는 게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오프라인 현금결제만 이뤄졌지만 인터넷 보급을 계기로 비대면 온라인 거래가 일상화됐다. 그럼에도 아직도 부동산 등 보다 깊은 신뢰가 필요한 일부 거래는 오프라인에서 이뤄진다. 직접 집을 보고 등기부등본 등 서류를 확인하는 식이다.
따라서 모바일 신분증은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오 유닛장은 “개인정보를 세분화해 이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기간만 기업에 제공하면 불필요한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자격과 소유권을 증명하고 계약 행위를 할 수 있는 아이디 체계가 있다면 부동산 같이 오프라인에 남아있던 거래 영역도 온라인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국민 모바일 신분증은 자격증명, 사원증, 출입증, 학력인증, KYC, 자금세탁방지(AML)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해외 진출도 검토 중이다. 여러 기업들이 가능성을 알아보고 SKT와 협력을 타진하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난 18일 SK텔레콤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LH는 임대주택신청 자격관리 등에 이 기술을 우선 적용하고 범위를 점차 확대할 생각이다. 오 유닛장은 “서비스 개발이 완성 단계인 만큼 은행권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블록체인 산업 진출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초대 오픈블록체인산업협회장이기도 한 오 유닛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올해 초 상황이었다면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을 것이란 시각에 동의한다”면서도 “아직 기회는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기업들과 큰 격차가 나지는 않는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습득했다”고 덧붙였다.
SKT는 내년 전국민 모바일 신분증을 시작으로 다양한 블록체인 사업을 공개할 예정이다. 소비자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오 유닛장은 “당장 토큰을 활용해 큰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선 익숙한 일들을 보다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 순간 생활이 편리해졌다면 그 뒤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T는 23~24일 열리는 ‘2018 코리아 블록체인 엑스포’에서도 앞으로의 블록체인 사업 비전을 상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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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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