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논리 따져봐야
박래정 < 베이징LG경제연구소 수석대표 >
지난 3월23일 미국의 선공으로 시작된 주요 2개국(G2) 간 경제전쟁이 반 년을 넘겼다. 500억달러 고율관세 견제구로 시작된 보복전은 이제 미국 전체 수출액의 7%를 넘길 정도로 판이 커졌다. 중국의 관세폭탄은 이미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언대로 내년 초 관세율을 현 10%에서 25%로 높이면, 중국은 빈 포신에 비관세 보복조치란 포탄까지 장전해야 할 처지다.
두 나라가 성장률을 낮추고 소비자도 불편한, 피차 손해보는 게임을 이렇게 길게 가져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트럼프는 중간선거 결과 하원을 민주당에 내주더라도 대중(對中) 압박만큼은 초당적 분위기를 타고 정치적으로 길게 끌고 갈 동력이 있다. 하강 기미가 있는 중국 거시경제를 보며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하다’는 셈법일 것이다. 중국도 수세에 처했지만,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비용이 관세보복의 피해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할 것이다. 쉽게 백기를 들면 공산당 리더십도 상처를 입는다. 선거로 정책을 심판하는 미국보다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이 내성(耐性)이 더 큰 점은 유리하다.
물론 연내 미·중 정상회담이 추진된다는 외신을 보면 G2의 갈등이 수개월 내 새로운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현 갈등 국면이 조율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미·중 관계로 돌아가긴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는 ‘누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켜 줬는가’라는 책임 소재 추궁이 한창이다. 지난 6월 중국의 증권·보험시장 단계적 개방 조치를 두고선 “40년 동안 개혁개방을 했는데 아직도 개방할 곳이 남아 있느냐”고 시큰둥해한다. 중국은 2001년 미국의 협조로 WTO에 들어오면서 금융시장 개방을 한시적으로 유예받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1990년대 G2였던 일본과 달리 중국은 경쟁의 룰이 다른 이질적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 재개입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보다 훨씬 차가운 미국의 민낯을 목도했다. 중국의 굴기를 막기 위해서 단기적인 성장세와 물가도 부분 희생할 수 있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결연함을 확인한 것이다.
지난 40년 글로벌 분업은 미국을 머리로, 중국을 몸통으로 진행돼 왔다. 그 결과가 ‘세계의 공장’ 겸 ‘세계의 시장’ 중국이다. 미국의 대중 전략은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위상을 허물고 실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번 관세보복은 말할 것도 없고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대한 미국의 견제, 선진국 중심의 새로운 무역질서 편성 시도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동아시아권에서 탈(脫)중국의 모멘텀을 키울 것이다. 중국과 수교 후 일관되게 중국 분업을 강화해온 한국 기업들로선 공급사슬의 효율을 재검토해야 할 처지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신냉전은 더 무섭다. 미국 첨단기업의 개념설계에 기반해 중국 후발기업들이 현실에서 결과물을 내는 방식의 두 나라 협력 구도가 흔들릴 것이란 얘기다. 중국이 자주혁신의 처지에 내몰린다면 유럽이나 일본 기업보다 첨단산업의 주변부에 놓인 한국 기업은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대중 수출품의 최종 목적지가 미국인 경우가 많은데도 그간 한국 기업들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프레임을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양국의 협력 모드가 위태로워진 이제 이 같은 프레임을 합리적으로 따져볼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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