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애증의 브라질 국채

입력 2018-10-22 19:01   수정 2018-10-23 06:26

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2000년대 일본에서 최고 금융 히트상품은 월지급식 펀드였다. 예금이자가 연 1%도 안 되는데 월 0.5~1.0%를 월급 받듯 ‘따박따박’ 수령해 고령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2001년 2조엔이던 펀드 규모는 2010년 16조엔(약 160조원)까지 폭증했다.

그런 고수익을 내기 위해 집중 투자한 게 브라질 국채다. 룰라 대통령 집권 후 브라질이 고성장을 구가하던 시기와도 맞아떨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격주간지 ‘펀드정보’는 2010년 2월 커버스토리로 ‘헤알·호주달러 선풍. 120엔 시대 개막!’이라고 보도했다. 브라질 헤알화와 호주 달러화 채권펀드에 투자하면 1만엔당 월 120엔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브라질 채권 붐은 2011년 한국에 상륙했다. 경제·사회 전반이 일본을 닮아가니 투자상품도 판박이다. 증권사들은 앞다퉈 월지급식 펀드를 내놨고, 브라질 국채 직접투자까지 호황을 누렸다. 그러다 룰라 퇴임 후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헤알화 가치가 급락해 1차로 큰 손실을 입혔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 덕에 브라질 경제가 안정된 2016년에는 국채 매매수익률이 71%에 달하는 대반전이 일어났다. ‘그 해의 추억’으로 인해 브라질 국채의 국내 투자잔액은 7조8390억원(8월 말)에 이른다. 이 중 9할이 은퇴자 등 개인 자금이다.

세상에 위험이 없는 고수익은 없는 법이다. 브라질 국채는 경제가 안정돼 채권값과 헤알화 가치가 오르면 수익률이 높지만, 그 반대면 이중으로 깨지는 구조다. 금리·환율 변동폭이 워낙 커 흔히 ‘주식 같은 채권’으로 불린다. 주식 수익성 대신 위험성, 채권의 안정성 대신 경직성이 부각되면 애물단지가 된다. 환헤지로 위험을 줄일 수도 있지만 헤지비용 6~7%를 떼면 고수익 매력이 사라진다.

올 들어 브라질 경제는 대선정국 혼란과 신흥국 불안 여파로 수익률이 8월까지 -19.2%로 추락했다. 게다가 환전수수료(0.3%), 증권사 판매수수료(3%) 등 부대비용이 커 팔기도 쉽지 않다. 만기까지 보유한 채 브라질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도해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불과 얼마 전까지 증권사들은 투자설명회를 여는 등 브라질 국채 판매에 열을 올렸다. 투기등급 채권 권유는 불법이지만 감독당국도 손놓고 있다. 고객은 앉아서 1조5000억원의 평가손을 떠안았는데, 증권사들이 그간 챙긴 수수료가 4248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 월가 격언이 된 ‘고객의 요트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말이 연상된다. 그럼에도 투자 문의가 잇따른다니 더 할 말이 없다.

이런 게 브라질채권뿐이겠나. 인기를 끈 ‘양매도 ETN(상장지수증권)’도 증시 횡보장에서 고수익을 내지만, 폭락장에서는 막대한 손실을 입히는 양날의 칼이다. 금융이 자꾸 ‘투자자의 무덤’이 되면 얻는 것은 몇 푼 수수료요, 잃는 것은 모두의 신뢰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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