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동트기 전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전날 밤늦게까지 아내가 준비해 준 제기와 제수들을 챙겨 서울역으로 출발했다. 제법 내리는 가을비에 어머니께서는 걱정이 돼 전화하셨다. 다행히 서울에만 비가 오고 남쪽지방에는 비 소식이 없다는 말씀을 전하니 안심하셨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동생이 올망졸망한 초등학생 조카 셋을 데리고 벌써 나와 있었다. 조카들은 목적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KTX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기차가 떠나기도 전 아침거리로 산 햄버거를 한입씩 베어 물고는 조잘대기 시작했다.
고향인 경북 청도에 묘사(墓祀)를 가는 날이었다. 매년 늦가을 일요일에 선산에서 친척 아저씨들과 동생들을 만나 조상들의 묘를 찾는다. 나는 청도에서 나지도 자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30년 넘게 매년 묘사 때마다 따라오다 보니 어느덧 고향이라는 정겨운 느낌도 든다. 예전엔 할머니와 친척 어르신들께서 함께하셨지만 이제 그분들은 돌아가셨다. 더이상 같이 오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사이 새로 식구가 된 조카들과 형수, 제수, 자형, 매제들이 함께하게 됐다. 세대는 이렇게 변해가는가 보다.
조상들께서 자식들 잘되라고 좋은 자리에 산소를 쓰신 덕에 산소는 산꼭대기에, 중턱에, 길도 없는 산속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산소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 산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길눈이 밝은 사람들은 잘 찾을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길치는 30년을 다녀도 여전히 어렵다. 남의 묘에 벌초하고 묘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았다.
이번엔 산소 위치를 정확히 남겨보려고 산속에서도 정확한 위치정보를 찍어준다는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 앱(응용프로그램)을 내려받아 갔다. 앱을 켜니 소수점 이하 6자리까지 표현되는 좌표와 함께 지도상에 내 위치를 표시해 준다.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는 오솔길 여정도 빠짐없이 기록해 준다. 이젠 산소 위치 찾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산 중턱에 둘러앉아 준비해온 김밥을 나눠 먹었다. 10촌이 넘는 촌수들을 다시 한번 따져보기도 하고, 조상들께서 다홍치마에 돌을 날라가며 집안을 일으킨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날이 어둡기 전에 서둘러 묘사를 마치고 청도 역전으로 달려갔다. 언제부터인가 전통처럼 돼버려 빼놓을 수 없는 ‘OO식당 추어탕’을 먹기 위해서다. 추어탕 한 그릇씩을 늦은 점심으로 나눠 먹고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50년 전통의 추어탕집과 최첨단의 GPS 앱 덕분에 200년 전 조상들과 후손들의 만남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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