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 기고] '쇄국정책'과 '메이지유신'…ICO 규제로 본 한국과 일본

입력 2018-11-01 12:00   수정 2018-11-02 09:04

딜로이트-한경닷컴 기획연재 (10·끝)
조성훈 <딜로이트 컨설팅 상무> 강정훈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컨설턴트>



최근 케이블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미스터 션샤인’이란 드라마가 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찌감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이 쇄국 정책으로 인해 뒤늦게 문호를 개방한 힘없는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우리에게는 조금 불편한 역사의 단면을 보여줬다.

일본과 한국의 암호화폐 공개(ICO) 규제 현황에서 특히 주목한 것도 이와 유사한 측면이다. 일본은 앞서 경험한 대규모 해킹 사건을 계기로 금지보다 오히려 개방과 혁신에 필요한 규제를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세우고 있다. 스마트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암호화폐 거래의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하고 울타리 안에서는 민간 주도의 발전과 경쟁, 투자를 유도하는 ‘건전한 ICO 생태계 조성’을 지향한다.

유사한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 사건을 겪은 한국은 대조적이다. ‘ICO 전면 금지’ 정책을 내세웠다. 산업 컨버전스(융합)와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적시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볼 때다. 쇄국 정책으로 문호 개방을 막았던 한국에 비해 메이지 유신으로 일찍 개방·개혁했던 일본이 오늘날 암호화폐와 ICO 분야에선 어떻게 혁신해나가는지 지켜볼 필요 또한 있다.

'메이지 유신' 일본

일본 정부는 암호화폐(Crypto currency) 대신 가상화폐(Virtual currency)란 용어를 사용한다. 2014년 당시 최대 규모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가 약 85만 비트코인을 해킹당해 파산했다. 올해 1월에는 일본 최대 화폐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체크(CoinCheck)사의 넴(NEM) 코인 해킹으로 6000억원 상당의 코인이 유출됐다. 이같은 대규모 사건에도 지난 7월 새로 임명된 토시히데 엔도 금융청 장관은 과도한 규제로 가상화폐 산업을 억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단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의 엄격한 심사와 투자자 보호를 염두에 두고 관련 법·제도는 정비한다는 입장이다. 가상화폐를 통한 ‘혁신 촉진’과 ‘소비자 보호’의 동시 추진 의지를 공고히 한 셈이다. 해킹 사건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ICO를 공식적으로 금지한 한국·중국에 비하면 적극적 행보를 취하고 있다. 사실 일본은 가상화폐를 합법적 지불 수단으로 인정하고 거래소 인가제를 시행한 첫 번째 나라다. 혁신과 스마트 컨버전스 준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 암호화폐 규제

일본은 거래소 해킹 대책으로 금융청에 연구회를 만들고 가상화폐 관련 새로운 규제를 발표했다. 일본 가상화폐 거래소 설립·운영의 법적 토대인 ‘자금결제법’은 금융청 연구회가 제안한 △가상화폐 거래소 등록체계 도입 △자금세탁방지법 기반 가상화폐 거래 시행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시스템 도입의 3가지 필수사항을 반영해 2017년 4월 ‘가상화폐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법정통화 지위는 아니지만 가상화폐가 결제·매매·교환이 가능한 결제수단으로 인정된다.

최근에는 ‘금융상품거래법’ 도입과 함께 가상화폐의 금융상품 취급 가능성도 열었다.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도 또한 거래소 등록은 물론 이용자에 대한 수수료 및 기타 계약조건 정보 제공, 이용자 재산과 업체 자산의 분리 관리, 거래시 인증 요구절차 의무화 등을 포괄적으로 담았다. 건전한 가상화폐 생태계 조성을 위해 ICO 생태계를 저해하는 요인은 원천 차단하면서, 동시에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자유로운 투자와 성장이 가능한 환경을 정부가 제공한 것이다.

◆ ICO 규제

일본 타마대 규제제정전략센터는 금융청 후원을 받아 ‘ICO 비즈니스 리서치그룹’을 꾸려 올해 ICO 규제 제정을 위한 제안서를 내놓았다. 제안서는 토큰 구입·판매 중심 현행 규제와 함께 발행 규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해관계자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한 투자자 신원 확인, 고객확인(KYC) 및 자금세탁방지(AML) 절차 준수, ICO 진행 상황 투자자 공유, ICO 범죄로부터의 투자자 보호 등을 포함한 ‘토큰 발행 2대 원칙’과 ‘토큰 투자 5대 원칙’도 제안했다.

토큰 발행의 2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발행인은 토큰 투자자, 지분 소유자, 채권자에 대한 잔여자산 및 조달자금, 이익분배에 대한 서비스와 규칙 등 투자자를 위한 사항을 규정·공개해야 한다.
△발행인들은 백서 진행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고 공개해야 한다.


핵심은 ICO를 발행인 의도에 따라 구성하고 진행하되 투자자 주주 채권자들의 권리 및 의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명확히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투자자들은 백서에 명시된 계획의 진행 상황을 언제든 확인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토큰 운영의 2대 가이드라인을 통해 ICO가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주거나 현존 금융자산의 확보를 위해 편법 운영되는 것을 제한했다.

토큰에 투자하는 투자자를 위한 5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토큰 판매자는 구매자의 신원정보(KYC)와 고객 적합성을 확인해야 함.
△토큰 발행을 지원하는 실행사(은행 혹은 법률고문)는 발행인의 KYC를 확인해야 함.
△가상화폐 거래에는 산업 차원의 최소 기준을 수립하고 적용해야 함.
△토큰 상장 후 내부자 거래와 같은 불공정거래 행위는 금지되어야 함.
△토큰 발행인, 거래소 등 거래 관계자들은 사이버 보안 유지에 노력해야 함.


일본의 ICO 규제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ICO 비즈니스 리서치그룹의 제안 내용이 곧 법제화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 회계·조세 제도

일본 국세청은 가상화폐 거래시 소비세를 면제해준다. 단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과세시 잡수입으로 취급해 발생 차익이 20만엔을 넘을 경우 15~55%의 소득세가 적용된다. 주식매매 차익에 부과되는 20%의 세금과는 차이가 있다. 2017년 12월의 ‘가상화폐 관련 소득 계산방법 등에 대해서’라는 방침을 통해 가상화폐를 보유만 할 경우 과세하지 않으나 엔화로 환금해 이익이 발생할 경우, 가상화폐로 상품을 구입할 경우, 다른 가상화폐와 교환할 경우에는 과세 대상이 되도록 했다. 금융청이 공표한 규제를 어길 경우에도 약 20%의 추가 과세가 될 수 있다. 일본회계기준위원회는 가상화폐가 판매 또는 현금 전환을 통해 현금 유입에 기여할 수 있으므로 회계상 자산으로 취급된다고 밝힌 바 있다.

'쇄국 정책' 한국

한국은 업비트·빗썸·코인원 등 대형 거래소를 보유한 세계적으로 가장 큰 암호화폐 거래 시장 중 하나다. 또한 정부가 암호화폐의 핵심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공표했다. 반면 정부는 암호화폐로 인한 사기 위험, 시장 과열 및 소비자 피해 확대, ICO의 위험성 등 부작용을 우려해 2017년 9월부터 ICO를 전면 금지 조치했다.

올 초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를 통한 암호화폐 거래 금지 법안 준비,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등을 언급한 것은 암호화폐와 ICO에 대한 국내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ICO가 합법인 싱가포르·스위스 등에서 법인을 설립한 뒤 국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해외에서 ICO를 진행하는 것은 규제할 수 없다. 따라서 ICO 전면 금지의 효과성을 객관적으로 검토시 국내 투자 자금의 해외 유출, 기술력 있는 우수 스타트업의 ICO 해외 법인 유출, ICO 해외 법인을 통한 국내 투자자 보호 및 ICO 사기로 인한 피해 예방의 어려움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될 수 있다.

◆ 암호화폐 규제

올해 6월 코인레일의 400억원 규모, 빗썸의 350억원 규모 암호화폐 해킹 및 도난 사건 등을 통해 위험성을 인지한 한국은 일본과 달리 암호화폐 정책을 보수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중심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에서 정책 방향을 논의 중이다. 최근 금융위가 발표한 암호화폐 거래소가 준수해야 할 AML 및 KYC 관련 신규 가이드라인은 암호화폐 거래와 투자자 모니터링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이와 함께 고객확인제 및 강화된 고객확인제 추가 실시로 외국인의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활용과 더불어 부정한 목적의 암호화폐 자금 이동을 사전에 감지, 원천 차단하고자 했다.

◆ ICO 규제

한국은 중국과 더불어 대표적 ICO 금지 국가로 꼽힌다. 작년 9월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TF는 ICO를 유사수신행위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유사수신행위 규제 관련 법률을 개정해 ICO를 전면 금지했다. 다만 2018년 들어 국회에서는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산업 활성화, ICO 허용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블록체인협회가 ICO 허용과 거래소 관리를 위한 가칭 ‘디지털 토큰산업 가이드라인’을 대정부 제안 형태로 내놓은 것도 그 일환이다. 주요 내용으로 정부 주도의 ICO 심사기관 지정 및 백서 타당성에 대한 공식적 심사 시행, 프로젝트 진행 과정의 공시 의무화, 엄격한 KYC 절차를 통한 투자자 확인 등을 담았다.

◆ 회계·조세 제도

암호화폐 시장 급성장에 따른 거래소 수수료 수익 증가, 발굴·거래를 통해 획득한 암호화폐의 재무제표 반영 방법 등 회계처리 방식의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최근 회계기준원은 암호화폐를 미래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자산으로 인식하고 기업 재무제표에 유동자산으로 분류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다만 세부적 분류는 변동성을 고려해 기업 판단에 맡기도록 했다. 또 공정가치를 기본으로 하지만 암호화폐 거래량에 따라 거래 빈도나 수량이 충분하지 않은 암호화폐는 취득 원가로 평가하도록 제안했다. 주목할 부분 중 하나는 일본과 유사하게 암호화폐를 회계 측면에서 자산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딜로이트와 한경닷컴은 블록체인, 암호화폐, ICO의 실체를 파악하고 한국 정부 및 사회가 보다 합리적인 법규와 정책을 확립하는 데 일조하고자 기고를 총 10회에 걸쳐 기획 연재합니다. 딜로이트는 ICO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하는 만큼 한경닷컴 기고문에서 최대한 의견 표명을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만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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