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수소 경제'에 박차
서울·울산 등서 수소버스 운행
안창호함 '심장'도 수소연료로
獨 수소열차, 1000㎞ 주행 가능
에너지 효율 높고 유해물질 '제로'
연료값 싸지면 시장 급팽창 할 듯
[ 송형석/윤희은 기자 ]
1839년 영국 웨일스 지역에서 법률가로 일했던 윌리엄 그로브는 물에 전극을 담가 놓고 산소와 수소로 전기분해를 하는 실험을 하다가 엉뚱한 착상을 한다. 전기분해 과정을 거꾸로 밟아보기로 한 것. 산소에 노출된 수소는 전기와 물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로브는 이 발견을 토대로 수소를 기반으로 전기를 만드는 ‘그로브 전지’를 고안했다.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석유의 시대를 끝낼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수소연료전지의 탄생이었다.
수소연료전지는 ‘전지’로 불리지만 ‘발전소’에 가깝다. 수소연료를 공급하면 계속해서 전기를 만들어낸다. 물 이외의 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효율도 높다. 닐 암스트롱을 태운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의 동력원으로 수소연료전지가 쓰인 이유다. 물에서 추출할 수 있어 고갈 우려도 없다.
생활 속으로 들어온 수소 경제
최근 일본과 중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석유를 수소연료로 대체하는 ‘수소 경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 8월 수소 경제를 ‘혁신성장 3대 전략투자’ 분야 중 하나로 선정했다.
국내에서 수소 경제의 결과물이 본격적으로 쏟아진 것은 올해부터다. 현대·기아자동차가 2월 상용 수소차 넥쏘를 선보이며 수소차 대중화를 선언했다. 원가가 대당 7000만원에 달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받으면 4000만원 선에서 구입할 수 있다.
수소 버스(사진)도 운행을 시작했다. 울산이 첫 테이프를 끊었으며, 서울에서도 서초구 염곡동과 종로를 오가는 405번 시내버스 중 한 대가 내년부터 수소 차량으로 대체된다.
지난 8월 진수한 3000t급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의 ‘심장’ 역시 수소연료전지다. 산소와 수소만 공급하면 지속적으로 발전이 가능해 디젤잠수함보다 20일 이상 수중에 오래 머물 수 있다. 독일엔 수소 기차도 유명하다. 최근 상업 운행을 시작한 코라디아 아이린트(Coradia iLint)라는 이름의 열차는 천장에 수소탱크와 연료전지를 갖추고 있다. 탱크 한 대분의 수소로 하루 1000㎞를 달린다.
다양한 수소연료 생산 방식
수소연료를 만드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물을 전기분해하거나 액화천연가스(LNG)에 뜨거운 물을 섞어 수소를 추출하는 게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이다.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부산물로 수소가 나온다. 국내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생산하는 수소는 연간 125만t이다. 대부분이 정유공정 등에 쓰이고 16만t 정도를 수소연료로 쓸 수 있다. 연간 8만 대가량의 수소차를 굴릴 수 있는 양이지만 가정과 산업용 수요가 가세하면 충분하다고 하기 힘들다. 일본처럼 기존 발전소에 수소를 생산하는 시설을 추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발전소의 유휴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식을 활용해 수소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계산이다.
수소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청정연료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수소를 포집하고 운반하는 비용이 만만찮다. 수소연료전지가 개발된 지 180년이 됐지만 ‘차세대 에너지원’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배경 중 하나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수소 연료전지(fuel cell)를 발음이 비슷한 ‘바보 전지(fool cell)’로 비하하기도 했다.
일반인은 안전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수소폭탄이란 말 때문에 불거진 오해다. 수소전기차에 사용되는 수소는 일반적인 수소분자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폭탄으로 쓰이는 중수소나 삼중수소와 다른 물질이다.
“전기차와 수소차 공존할 것”
전문가들은 수소연료가 경쟁력을 갖추는 시점을 2030년 전후로 보고 있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연구예산을 늘리면서 수소연료를 생산·보관·유지하는 비용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예측이다.
시장조사기관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소 에너지와 관련한 논문은 7만6000편에 달했다. 이 중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만 6만7000편에 이른다. 물을 전기분해하는 과정에서 촉매로 쓰이는 백금과 루테늄 등의 금속을 니켈 등 저렴한 금속으로 대체했고 수소의 저장 보관 효율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
정성욱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연구실장은 “수소 경제는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루한 마라톤”이라며 “여유 전기로 수소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인프라를 얼마나 갖췄느냐가 10~20년 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전기차의 보완재로 수소차가 쓰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의 한계는 충전이다. 고속충전기를 활용해도 리튬이온전지의 80%를 충전하는 데 20분 이상이 걸린다. 미국처럼 가정마다 차고가 있고 충전이 자유로운 환경이 아니라면 선뜻 전기차를 선택하기 어렵다.
전기차는 주행거리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 주행거리가 300㎞에 못 미친다. 차가 무거워질수록 주행거리는 더 줄어든다. 수소차는 5분이면 충전이 끝나고 주행 가능한 거리도 휘발유차보다 길다. 버스나 화물차 대형 차량의 경우 전기차보다 수소차가 유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송형석/윤희은 기자 clic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