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롤러코스터 증시에 울고 웃는 직장인들

입력 2018-11-05 17:20   수정 2018-11-06 10:10

'마통'으로 주식 샀다 손실…"마이너스 손이라 놀림감 ㅠㅠ"
적금 깨 물타기…"잃은 돈 생각날까, 주식앱 쳐다도 안봐"

가상화폐 투자했다 20% 잃고
주식 눈돌렸더니 주가 대폭 하락
동료들 '끝물 전문가' 놀림에 한숨

정부 믿고 '코스닥 펀드'에 투자
세제혜택 보려다 손실 못 면해
지금보다 더 떨어질까 '노심초사'

하락장에 웃는 '개미' 직장인도
"지수 떨어지면 수익내는 상품으로 선방"



[ 조아란 기자 ]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 과장(34)은 사내에서 ‘끝물 전문가’로 불린다. 손을 대는 투자마다 손실을 봐 붙은 별명이다. 지난 1월엔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1주일 만에 20% 손해를 봤다.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려 잘나간다는 ‘바이오주’에 올라탔다. 이번에도 운은 따라주지 않았다. 곧바로 ‘거품론’이 제기되며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달 들어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해소 조짐을 보이면서 10% 이상 오르긴 했지만, 아직 ‘본전 고지’는 멀다. 이 과장은 “주가가 더 올라서 동료들에게 ‘바닥일 때 들어오지 그랬냐’고 반격할 날만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직장인과 주식투자의 관계는 밀접하다. 지난 1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6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주식투자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 그래프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결정된다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가정의 평화’ 위해 증권계좌 매일 확인”

방송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다니는 김 과장(37)은 가정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증권계좌를 열어 본다. 연말에 결혼기념 선물을 해주겠다고 아내에게 큰소리를 쳤는데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걱정돼서다. 몰래 모아둔 비상금 800만원으로 주식투자에 성공해 목돈을 만들 생각이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자신이 있었다. 가치주 투자의 거장으로 불리는 필립 피셔의 책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를 독파한 뒤 ‘초대형 우량주에만 투자한다’는 나름의 철학을 갖고 투자에 임했다. 실제 투자도 선방하는 듯했다. 주당 200만원대 초반에 사들였던 삼성전자 주식은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 때도 굳건하게 버텼다. 한때 280만원을 넘어 곧 300만원을 돌파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달 미국 증시가 하락하고 삼성전자 주가도 덩달아 떨어지면서 속앓이를 했다. 김 과장은 “이달 들어 미국 반도체 주가가 급등해 국내 전자업계 주가도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아내에게 사줄 결혼기념선물 가격이 매일 달라진다는 생각에 증권계좌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시가 반등하면서 오히려 걱정이 늘어난 직장인들도 있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이 과장(37)은 올초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에 가입해 지난달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 코스피지수가 떨어지면 수익이 나는 상품이다.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주가가 떨어졌다고 푸념하는 동료들 틈에서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힘들었다. 지난 2일 코스피지수가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동료들 눈치 보느라 주가가 더 떨어져야 한다고 말을 할 수도 없다. 이 과장은 “이번엔 우울한 얼굴을 감추느라 또다시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빚내서 투자금 늘렸다가 ‘지옥’을 봤다”

투자금을 무리하게 늘린 직장인들은 수익률이 출렁일 때마다 감정 기복이 더 크다. 경기에 있는 중견 제조업체에 다니는 최 과장(37)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2000만원을 마련해 ‘코스닥벤처기업 소득공제펀드’에 가입했다가 연일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지난 4월 정부가 코스닥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세제혜택까지 줘가며 밀어주는 펀드라는 말을 믿고 가입했다. 지난달까지는 6개월 만에 22%나 손실을 봐 분통이 터졌다. 이달 들어선 미·중 무역분쟁이 해소될 조짐이 보인다는 말이 돌자마자 하루 만에 코스닥지수가 5% 넘게 오르기도 해 최 과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마이너스통장 이자를 갚고도 남는 수준으로 수익률이 오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 대리(29)는 주가가 좋았을 때 투자금을 무리하게 늘렸다가 ‘지옥’을 맛보고 있다. 그는 올초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CJ CGV주식 등을 8000만원어치 샀다. 작년 초 “주식으로 용돈벌이를 한다”는 회사 동료의 말을 듣고 500만원을 투자했다가 반년 만에 20% 수익을 얻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달랐다. 투자하자마자 주가가 고꾸라졌다. 한 달 만에 원금의 30%가 날아갔다. 이 대리는 “속이 쓰려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던 주식 앱(응용프로그램)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며 “주가가 오를 거란 기대는 있지만 수익률이 확 오르기 전까지는 주식투자에 신경을 끄려고 한다”고 말했다.

목돈 생길 때마다 ‘물타기’

출렁이는 증시에 대한 김과장 이대리의 대처법은 각양각색이다. 중견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유 과장(35)은 한 달 전부터 목돈이 생길 때마다 하락한 주식을 추가로 사는 ‘물타기’를 하고 있다. 주당 매입가격을 낮춰서 주가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유 과장은 “적금까지 깨서 주식을 추가로 샀다”고 말했다.

주가 하락에 고통받는 동료들을 보면서 조용히 안도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이 과장(37)은 올해 초 코스피지수가 떨어지면 수익이 나는 리버스 상장지수펀드(ETF)에 가입해 쏠쏠한 수익을 냈다. 이 과장은 “개별 종목 대신 변동성이 작은 펀드나 지수추종형 상품에 투자한 것이 하락장에서도 선방한 비결”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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