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데스크 시각] 'BTS 효과' 확산하려면

입력 2018-11-11 17:06  

장규호 문화부장


[ 장규호 기자 ] 방탄소년단(BTS)이 단연 최고의 화제다. 관련 뉴스가 안 뜨는 날이 없다. 지난 10일 일본이 한 멤버의 ‘광복절 티셔츠’를 이유로 BTS의 방송 출연을 취소하기로 해 논란을 빚었다. 앞서 6일 국내 한 뮤직어워즈 행사에선 9관왕을 차지했다. 팬클럽 ‘아미’ 회원이 되려고 줄 선 사람도 새카맣다. BTS 노래를 끝까지 들어본 적 없는 중년도 ‘BTS 신드롬’을 얘기한다. 세계 음악팬과 미디어들이 BTS와 한국을 주목한다. 방탄이 삼성 스마트폰과 LG 에어컨, 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표 브랜드와 제품 못지 않은 상품이 됐다. K팝 열풍은 K패션, K뷰티, K푸드, K무비 등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세계인의 사랑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류(韓流)가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고 있다.

대중음악, 영화 등 산업화된 장르에서 다른 예술 분야로 눈을 돌리면 싸늘한 현실이 버티고 있다. 클래식 음악, 미술, 무용 등 고전 분위기가 강한 장르의 예술인들은 자신의 재능을 뽐낼 공간 자체를 찾기 어렵다. “무대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한 클래식 전문 연주자가 한둘이 아니다”는 음악인들의 하소연이 엄살이 아니다. 지방인 대구 오페라하우스 오디션에도 전국 각지의 성악가가 300명 넘게 몰려들 정도다.

좁디 좁은 예술인의 길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4년제 대학과 전문대에서 예술을 전공한 졸업자는 한 해 5만3634명(2016년 기준)씩 쏟아진다. 연극·영화, 디자인, 응용예술 등 팔려 나갈 ‘시장’이 있는 분야를 빼고 음악(클래식, 국악 등)과 미술·조형, 무용 전공자만 추려도 1만3341명이나 된다. 클래시컬한 장르에서 전공을 살려 예술인으로 살아가기엔 시장이 너무 작고, 상대적으로 공급은 너무 많다.

통계청의 ‘2015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음악 전공자들의 졸업 후 진로 1위는 예능강사(43.2%)다. 지휘자·작곡가·연주자(3.7%), 가수 및 성악가(3.2%) 등 전공을 살린 직종에는 10명 중 한 명도 못 갔다. 절반가량이 생계를 위해 예술 사교육시장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얘기다. 미술도 시각디자이너(5.9%), 화가·조각가(4.2%) 외에는 붓을 들지 않는 직업을 찾아갔다. 무용 전공자도 무용가·안무가는 3.2%에 불과했고 예능강사가 36.6%에 달했다.

나얍 코리아라는 모범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한국경제신문사와 미국 나얍(NYIOP·뉴욕국제오페라프로젝트)이 지난 9월 아시아 최초로 개최한 성악오디션 ‘나얍 코리아’는 그래서 호평받을 만하다. 160명의 오디션 참가자 중 49명(30.6%)의 성악가가 지난달 말 선발(계약 고려 대상자) 통보를 받았다. 세계 여러 곳에서 열린 나얍 오디션 때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3월 열린 나얍 뉴욕에선 144명 중 9명이, 2월의 나얍 런던에선 168명 중 14명이 선발됐을 뿐이다. 뉴욕시티오페라 등 7개 극장 캐스팅 감독은 당초 극장별로 3~4명씩 총 20~30명 정도를 계약 고려 대상자로 뽑으려 했다. 하지만 한국 성악가들의 놀라운 기량에 반해 선발자를 늘렸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경제와 문화 사이에 가교를 놓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예술 전공자에겐 그 업을 이어갈 무대를 마련해주고 나라 경제에는 고용을 창출하는 순기능을 한다. 김성규 신임 세종문화회관 대표는 “민간 재원을 결합시켜야 공연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기업들이 어떤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해 보겠다”고 했다. 클래시컬한 문화예술 분야도 이런 식으로 멍석을 자꾸자꾸 깔아줘야 한다.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한류 경제’를 만들려면 말이다.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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