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전망] 공정거래법 선진화, 시대상황에 맞춰야

입력 2018-11-1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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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시장만 고려한 대기업 규제
글로벌 경쟁 무시한 역주행일뿐
과감한 규제개혁 논의 선행돼야"

전삼현 < 숭실대 교수·법학 >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 제정 후 38년 만에 ‘전부 개정안’을 이달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전부 개정안을 지난 8월 입법예고했다. △경성담합에 대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 △신규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의무 지분율 요건 강화 등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상당한 압박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특히 공정위에 불공정거래 신고가 접수된 기업의 80% 이상이 중소·중견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에 비해 중소·중견기업이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에 대해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공정거래법이란 경쟁을 제한해 시장을 왜곡하고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중요한 법률이다. 따라서 이 법을 개정할 땐 대기업은 물론 중소·중견기업 소비자 등 가능한 한 많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 후 순기능과 역기능을 명확히 비교하고, 그 타당성과 적절성에 대해 입법적 검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지난 3월 법 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후 8월에 입법예고를 하는 속전속결식 법 개정 방식을 택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기업 의견을 진지하게 들었다거나 입법예고안에 기업 의견을 반영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해관계자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급하게 입법안을 마련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외국에서는 중요한 법률 개정을 수년에 걸쳐 신중하게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은 1977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한다. 당시 세계적인 오일쇼크로 인한 정유사 가격담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개정을 추진했다. 입법 과정을 보면 1973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뒤 논의를 시작해 1974년 중간보고서를 발표했고, 신중한 국회 논의를 거쳐 1977년이 돼서야 법안을 최종 통과시켰다. 법안 논의부터 통과까지 5년 걸렸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정위는 왜 이렇게 빠르게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일까. 공정위는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을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과제 중 하나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즉,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은 물론이고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차단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건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현 정부 내에서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충실한 논의보다는 ‘스피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소위 ‘전면 개편’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상 아쉬운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현재 입법예고안에서는 4차 산업혁명, 글로벌 경쟁 격화 등 과거와는 판이한 경영환경을 고려한 제도 개선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개편안은 지난 20년 이상 논의된 재벌개혁에 목적을 둔 상투적 법 개정안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은 외국과의 상품, 용역,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소규모 개방경제체제다. 세계 52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국내 대표 기업 매출 중 70~9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더 이상 국내 시장, 해외 시장 구분이 무의미한 상황이다. 국내 시장만을 고려한, 경제력 집중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따라서 전면 개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대 상황에 맞는 과감한 규제개혁 과제를 발굴하고 공론화하는 실질적인 논의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 산업 현장에서 글로벌 경쟁을 체감하고 있는 이해관계자의 진솔한 의견을 듣고 폭넓은 논의를 거친 후 제대로 된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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